[사전 조율 없이 취재진과 문답]
文대통령 北변화 답변에… 트럼프 "전에 들어봤던 것" 통역 막아
외교 결례 논란
트럼프 "언젠가 하나의 한국으로 돌아갈 것" 첫 남북통일 언급도
2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예정에 없던 '돌발 기자회견'이 34분간 진행됐다. 당초 양국 정상은 모두(冒頭) 발언을 한 뒤 배석자 없는 단독 회담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발언 직후 갑자기 취재진에게 질문할 기회를 줬고, 길게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정상회담 전 사전 조율 없이 취재진과 질의응답식 회견이 이뤄진 건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외교 결례 논란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미·북 정상회담 개최 문제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계속 밝혔다. 여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미·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이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 열린 정상회담을 바로 앞두고 언론에 먼저 입장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 앞에서 문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직접 만난 뒤 비핵화와 관련한 입장이 달라졌다는 취지로 말한 뒤 "문 대통령은 다른 의견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김정은과 시 주석 간 만남에 대한 당신의 느낌은 무엇인가"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한국어로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의 역할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를 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북·미 회담의 성공을 위해 미국과 함께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라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대답은 영어로 통역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역을 듣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예전에 들어봤던 것(답)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결례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 회담을 취재한 청와대 '풀(pool) 취재단'이 정리한 트럼프의 발언은 "통역이 필요 없겠다. 왜냐하면 좋은 말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번역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통일도 처음 언급했다. 그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언젠가는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지금은 2개의 매우 성공한 남·북한을 보고 있다"며 "지금은 아니겠지만, 장차 언젠가 아마도 그들이 함께 모일 것이고 하나의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들이 원하는 한 나에게도 (통일된 한반도가) 괜찮다"고 했다. 남북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앞서 지난 3월 문 대통령은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다.
앞서 지난 18일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은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소개하면서 "(양 정상은) 백악관에서 배석자 없이 단독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이행 방안을 중점적이고 심도 있게 협의할 예정"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날 10여 차례의 '즉석 문답'이 34분간 오가면서 30분간 진행될 예정이었던 단독 정상회담은 21분으로 단축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 정상이 할 얘기는 충분히 했다"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만나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 '평화와 번영을 향한 한·미 동맹, 세계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길!'이라고 적었다. 양 정상은 이날 모두 감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 붉은색과 남색이 들어간 사선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착용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도 양 정상은 파란색 넥타이를 맞춰서 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