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북정상회담 ‘조건’ 첫 언급...文대통령 “예정대로 열릴 것 확신”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최근 북한이 한미 양국에 보이고 있는 태도와 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미북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지만 현격한 시각차이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최근 북한과 중국사이의 밀월관계에 대해 불신의 시선을 보내면서,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을 경우 미북정상회담 자체를 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시사한 뒤에도 여전히 “북미정상회담의 개최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며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靑 “미북정상회담 조건 놓고 두 정상이 이야기한 적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중 취재진에게 질문을 받고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조건을 얻을 수 없다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갖지 않을 것(There are certain conditions that we want. And I think we’ll get those conditions. And if we don’t, we don’t have the meeting)”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입장이 미북정상회담을 언제까지 연기한다는 의미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는 “지금 김 위원장을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기회에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것(If it doesn’t happen, maybe it will happen later, at a different time)”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함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두번째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다롄에서) 만난 후 김정은의 태도가 좀 변했다”며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을 무산시킬 수도 있는 ‘특정한 조건(certain conditions)’을 언급하자 청와대는 당황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미국 워싱턴에 마련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며 “그 조건이 무엇인지를 놓고 두 정상이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시사한 직후에도 여전히 “최근의 북한의 태도 변화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하는데, 저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께서 북미정상회담도 반드시 성공시켜서 65년 동안 끝내지 못했던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룸과 동시에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북미 간에도 수교를 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그것은 세계사에 있어서 엄청난 대전환이 될 것”이라고 했다.

◇ 靑, 방미길 “미북회담 99.9% 성사”라더니...끝날때 ‘예정대로 열리나’ 질문 쏟아져

우리 정부는 6월 미북정상회담 자체는 “99.9%” 확률의 기정사실로 보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6월 12일 이후 상황을 미국과 논의하려고 했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예상밖 발언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장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결과 브리핑을 위해 미국 워싱턴 현지에 마련된 브리핑장에 들렀다가 오는 6월 12일로 예정된 미북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 있냐는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다.

윤 수석은 “문 대통령은 22일 낮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의 개최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며 “북미 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비핵화와 체제 안정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을 수행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1일 미국행 비행기에서 미북정상회담에 대해 “지금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6.12 미북정상회담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고 중요한 합의를 이룰 수 있게 할지, 합의를 이룰 경우 그 합의를 어떻게 잘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두 정상간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미정상회담 비공개 부분의 대화 내용에 대해 “양 정상은 최근 북한이 보인 한미 양국에 대한 태도에 대해 평가하고, 북한이 처음으로 완전 비핵화를 천명한 뒤 가질 수 있는 체제 불안감의 해소 방안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면서도 양 정상이 합의한 내용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거의 전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평가는 서로 보는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는 것”이라고 전해, 한미 정상간 이견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평가라는 점에 유념해달라.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이지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해야한다, 아니어야한다는 의견은 전혀 아니다”고 덧붙였다.

◇ 트럼프, 文대통령과 정상회담 ‘대북메시지’ 발신 기회로 사용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철저하게 북한이나 중국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회담을 활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애초 30분 가량으로 잡혀 있던 한미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인 단독회담 시간을 거의 대부분 취재진들과의 문답에 써버렸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단독회담을 통해 한미 정상간 내밀한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12시 7분경 단독정상회담을 시작해 오후 1시 3분경 단독회담을 마무리했지만, 양 정상의 공개 모두발언과 예정에 없던 취재진과의 문답을 제외하면 양국 정상간 비공개 회담 시간은 21분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정에 없이 취재진들에게 질문하고 답할 기회를 줬고, 이같은 문답은 34분 가량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시사 발언도 이 때 나왔다. 통상적이라면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단독회담에 앞서 짧은 모두발언만 하고 회담을 비공개로 전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다롄 회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후, 옆에 있던 문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 김정은의 두번째 만남에 대해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지금 말해도 좋다”고 공개적으로 묻기도 했다. 흡사 리얼리티쇼 진행자 같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행동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겨우 이틀 앞둔 지난 20일 문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일(현지시각) 이와 관련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왜 북한의 담화 내용이 남북 정상회담 후 문 대통령이 전한 내용과 상충되는지를 물었다”며 “문 대통령이 미국에 올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