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과 現 정부 인사들, 北의 비핵화 진정성 믿지만
태영호 前 공사는 '불가능' 판단… 중장기 과제 되면 대비책 있나
 

최재혁 정치부 차장
최재혁 정치부 차장

적지 않은 이들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혼란을 느꼈다고 한다. 연기(演技)라 해도 김정은의 퍼포먼스는 그럴듯했다. '폭군(暴君)'에서 '정상국가 리더'로 변신하는 과정을 못 받아들이던 사람들도, 미·북 회담이 가시화되자 심리적 저항선이 허물어지는 것 같다. "김정은이 정말 핵을 버리고 개혁·개방으로 가려나 보다"는 대화가 주변에서 늘었다.

미·북 회담은 사실상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왔다. 그저께 북한의 "조·미(朝美) 수뇌회담 재고려" 발표도 싱가포르까지 가는 길을 끊어 놓을 만큼의 수준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남북한과 미국이 이미 너무 많은 판돈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13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전해들었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홍 대표가 남북 대화 과속(過速)과 한·미 동맹 균열을 우려하자, 문 대통령은 "미국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북한과 대화하지 말라고 하면 좋아하겠는가"라고 받아쳤다.

문 대통령은 "미·북 회담에서 성과가 없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중간선거에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이 북과 마주 앉겠다고 한 것은 큰 성과를 예상한 것"이란 말도 했다고 한다. 상당수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는 비핵화 국면을 2020년 미(美) 대선까지 끌고가 재선(再選)에도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문 대통령은 홍 대표에게 "남북 대화에 무조건 제동만 걸면 지방선거에도 악영향일 것"이란 '충고'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그 여파가 6·13 지방선거판을 덮쳤다. 문 대통령의 예상대로 돼 가고 있는 셈이다. 야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자신이 있으니깐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휘말린 후보의 사퇴도 막은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번 대화 국면은 제재를 못 견딘 김정은이 핵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시작됐다. 문제는 김정은에게 정말 비핵화 진정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외교·안보팀 인사들은 '그렇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들은 김정은이 '선대(先代)의 비핵화' 유훈을 끌어들인 것을 "비핵화 터닝(turning)을 위한 내부용 메시지"로 해석했다. 북한이 '체제 보장' 외에 주한미군 등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달지 않은 것도 근거로 들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지난달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TV 중계를 숨죽이고 지켜봤다고 한다. 최근 출간한 자신의 책에서 그는 북한이 과거 핵협상에서 상대를 어떻게 기만(欺瞞)했는지를 내부인(內部人) 시점에서 서술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은 정치범 수용소와 김씨 가문만 사용하는 '특수지역'을 수없이 갖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죽어도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각에서 대한민국 국력이 가져온 회담 성과를 김정은의 과감한 결단과 용단으로 돌리는 것에 마음 아팠다"고도 했다.

김정은이 품고 있는 '비핵화'의 윤곽은 다음 달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드러날 것이다. 회담 결과가 어떻게 포장 되더라도 우리의 관심사는 '남한이 북한 핵을 이고 살아야 할 여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핵탄두 몇 개와 미국을 겨냥한 ICBM만 내놓고 나머지 비핵화 프로세스는 중장기 과제로 넘겨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슨 보완 장치를 요구해야 할까. 흙먼지가 가라앉으면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에 대한 준비는 돼 있는 것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7/20180517031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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