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판 前 기 싸움 나선 北, '核 폐기'는 흔들릴 수 없다

북 외무성 김계관 1부상은 16일 "우리에게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다가오는 조미 수뇌(미·북 정상) 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볼턴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북핵을 미국으로 반출하는 리비아 핵 포기 방식과 '핵·미사일·생화학무기 완전 폐기'를 주장하는 데 대해 "격분을 금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계관이 같은 담화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질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을 것"이라고 한 것을 보면 실제 미북 정상회담을 결렬시키겠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외상 대신 부상이 나섰고 미국 측 책임자인 폼페이오 장관에 대해선 실명 비판을 삼간 것을 봐도 그렇다.

미국과 담판을 앞두고 미국 측 요구를 누그러뜨리고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사전 기 싸움 성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계관이 북이 리비아·이라크와는 달리 핵보유국임을 강조한 것은 미·북 간 핵 담판을 핵 군축 회담 성격으로 가져가겠다는 종전 주장을 다시 들고나오는 것처럼 보여 걱정스럽다. 북이 이른 시일 안에 핵무기·핵물질·핵시설과 탄도미사일 및 생화학무기를 폐기하거나 국외로 반출하면 북의 체제를 보장하고 북의 경제 발전을 돕겠다는 미국식 해결 방식을 그대로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은 김계관의 담화에 앞서 16일 자정을 갓 넘겼을 무렵 한국과 미국 공군의 연합 공중 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며 이날 열릴 예정이던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소했다. 15일 오전에 자신들이 제안해놓고 한나절 만에 뒤집은 것이다. 회담 개최를 불과 10여 시간 앞둔 시점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남북 대화를 제안한 이래 남북 간에 합의된 일정을 한밤중에 취소 통보한 것이 지난 1월 북한 예술단의 방남, 2월 금강산 남북 합동 공연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미·북 간 현안이 자기들 뜻대로 풀려가지 않을 때 미국 대신 한국을 향해 멋대로 화풀이하는 버릇이 다시 튀어나온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측 편을 들어 미국을 설득해 달라는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다음달 12일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은 반드시 열려야 한다. 어렵게 잡은 역사적 기회가 마지막 순간 어그러지지 않도록 북을 달랠 수 있다면 달래서라도 회담장에 나오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 회담의 목적이 북핵을 없애는 것이란 근본은 결코 바뀔 수 없다. 이 기회에 우리 국민과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화학무기까지 전부 없애야 한다. 그 대가로 북이 원하는 것을 더 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 핵 폐기 원칙만큼은 흔들릴 수 없다. 회담이 깨지는 것을 막는 데 급급해 북이 하자는 대로 핵실험장 폭파 같은 쇼 몇 번 하고 북의 수중에 핵과 시설, 인력을 남겨두게 되면 우리는 돈은 돈대로 빼앗기고 핵 인질로 남는 처지가 된다. 미·북 정상회담으로 노벨상을 받겠다는 기대에 들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