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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대북정책 25년 갈등, 2년반 안에 결판난다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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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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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25년 동안 對北 정책 냉·온탕 오락가락
남·북·미 頂上 임기초 담판, 햇볕논쟁 결판낼 기회맞아
핵폐기면 민족 번영 門 열고 사기극이면 南南갈등 끝내야
 

김창균 논설위원
김창균 논설위원

북 비핵화 담판의 쾌속 행진을 보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할아버지, 아버지를 뛰어넘는 결단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김정은의 판돈 지르는 솜씨가 과감한 것은 분명하지만 김일성, 김정일에겐 그런 기회 자체가 안 주어졌다. 김일성은 197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카터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자 파키스탄 대통령을 통해 직접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카터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엔 허담 외교부장이 밴스 국무장관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제안했다. 김일성은 미·북 양자 접촉을 원했지만, 미국은 한국이 낀 3차 협상을 고집했다. 카터 대통령은 김일성과 일대(對)일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김정일은 클린턴 대통령과 핵 담판을 원했다. 2000년 10월 북한 2인자인 조명록 차수가 군복을 입고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지 10여일 만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다. 김정일은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를 기념하는 카드섹션을 보여주면서 "저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발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다짐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건네는 평양 초청장이었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ICBM 발사 때문에 새벽잠을 설치시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한 것은 18년 전 아버지 대사의 패러디였던 셈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결국 평양에 가지 않았다. 그는 회고록에서 '올브라이트는 내가 가면 북한과 협상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북한과 협상을 진척시키고 싶었지만 중동 평화 협상의 성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지구 정반대 편에 가 있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에게 외교·안보 분야 전공 필수는 중동 평화였다. 북핵은 과락만 피하면 되는 선택 과목이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저서에서 "미국은 한반도에 당장의 위험이 터지지 않는 한 다른 일로 너무 바빴다. 북한이 일을 저질러야 미·북의 주고받기가 겨우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미국 공화당 행정부는 전통적으로 북한과 협상 자체를 꺼렸다. 트럼프 행정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전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무조건 거꾸로 간다. 오바마의 이란 핵 협정은 뒤엎으면서 오바마가 손을 놨던 북핵 해결을 자기 성과로 삼는 선택을 했다. 김정은이 미 본토를 때릴 수 있는 ICBM 발사에 성공하며 미 국민의 관심도가 높아진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을 풀고 싶어도 한국 정부가 장단을 안 맞춰 줬으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2기 행정부 때 2006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로 북핵 협상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북핵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면서 탄력을 잃었다. 지난 25년의 핵 위기 과정에서 한·미 양국에 대북 협상파 정권이 공존했던 기간은 김대중·클린턴이 짝을 이룬 1998년 초부터 2001년 초까지 3년간이 전부였다.

북한 왕조엔 대통령 임기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의 생물학적 연령과 통치 기간에 따라 추진력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김일성은 카터 전 대통령과 핵 동결 합의를 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자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사망했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했던 50대 후반엔 한반도 냉전 구도를 흔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60대 중반엔 만사가 귀찮은 표정이었다. 김정일은 그 후 1년도 안 돼 뇌졸중을 겪었다. 김정은은 지금 혈기 왕성한 30대 중반이다. 집권 8년째를 맞아 자신감도 넘친다.

남북한과 미국 모두 판을 바꿔보자는 배짱이 맞은 지도자들이 그것도 임기를 상당 기간 남겨둔 상태에서 만났다. 자전 주기도 다르고, 음양이 오락가락 바뀌는 세 나라 별이 한 지점에서 서로를 끌어당긴 이번 같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는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핵 폐기 합의가 이뤄질 경우 그 이행 과정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0년 말까지 어떤 정치적 장애물도 맞닥뜨리지 않고 진행된다. 협상을 통해 북핵을 없앨 수 있을 것인지의 오랜 논쟁도 그 2년반 안에 결판이 난다. 햇볕이 정말 북의 핵 외투를 벗긴다면 7500만 한민족 앞에 번영의 문이 열리게 된다. 반대로 김씨 일가의 3대에 걸친 사기극으로 확인돼도 5100만 대한민국 국민은 남남 갈등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어떤 경우든 대북 정책이 냉탕·온탕을 오가며 안갯속을 헤매는 것보다는 해피엔딩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5/20180515031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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