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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北과의 경제 협력, '가치'와 '목표' 속에 추진돼야 한다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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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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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의 동독 지원 경험 보면 好意 베푸는 게 좋은 결과 가져오는 것 아니야
北 요구 무조건 수용은 안 돼…
독재 정권과의 '우리 민족끼리' 修辭는 더 이상 울림 없어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에 개근하다시피 한 친구 녀석은 아들과 헌법에 대해 얘기하기가 즐겁다며 웃었다. 젊은 시절 시위를 쫓아다닐 때도 냉소했던 헌법을 이제는 신뢰할 수 있다고 했다.

헌법재판소가 밝힌 파면 사유는 권력을 남용한 데다 그것을 은폐함으로써 법치와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한 세대 전에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판결은 그간 국민의 민주 의식과 정치 환경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초법적인 제왕적 통치를 더 이상 묵인하지 않을 것이며, 헌법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집단 의지가 표출된 결과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만난 그 친구는 "촛불 집회를 부지런히 다닐 때 한없이 명확했던 것들이 요즘에는 허상처럼 느껴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독재 프로파간다의 확성기인 '북한의 괴벨스' 현송월이 한국 언론에서는 매력적 연예인처럼 다뤄졌다. 촛불로 탄생한 정부 여당의 대표는 친족 암살과 요인 숙청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북한 지도자를 보고 감격적이라 했다.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가 혼란스러워할 만하다.

물론 무엇이 됐든 전쟁보다 낫지만 국제 무대에서 김정은의 진정성을 보증 서거나 독재 정권을 미화하거나 옹호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우리 국격(國格)에 치명적이다. 미·북 정상회담 결과가 어떻든 비핵화 실현 여부와 북한 정권의 진의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드러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냉철하고 선량한 중재자 역할을 다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세계 속 우리 위상도 결정된다. 한국 민주주의 역시 시험대에 선 셈이다.

지난 몇 달 거대한 예능 프로그램처럼 느껴질 정도로 감성적 접근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쉬운 측면도 있으나, 크게 보자면 남북 관계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우리 정부의 존재감과 진정성을 세계에 알린 성과도 크다. 정치 기술 측면의 탁월함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구체적 경제 협력이 논의되는 국면부터는 감성보다 이성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게 그들의 본심(本心)을 바꿀 거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독일 통일 전 수년간 직접 보조금, 정치범 석방에 대한 몸값, 동독 내 도로 건설 지원, 관대한 교역 조건과 저리 차관 등 다양한 명목으로 매년 20억달러에 이르는 서독 재원이 동독으로 유출됐다. 그 덕분에 동독 주민은 동구권에서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누렸지만, 그것은 주민의 불만을 해소했기에 독재 체제의 안정에도 기여했다. 동독의 호네커 정권은 다른 동구권의 개혁 흐름을 조소(嘲笑)했고, 서독은 스탈린주의를 보조한다는 우방의 비난에 직면했다. 훗날 콜 총리는 동독에 호의를 베푸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은 것은 환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사후적으로 서독이 국제사회에서 손가락질받지 않는 것은 방향성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지원을 개방과 정치적 관계 개선에 연동했고, 민간인 교류와 정치범 석방에 직접 연계함으로써 동독 정부를 압박하며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동독 주민들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사 들고 돌아온 소니 워크맨은 서독의 풍요와 자유를 묻혀왔고, 이는 기득권층의 충성심을 약화시키지는 못했지만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바꾸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그 바탕에는 민주국가와 독재 정권 간의 어떠한 형태의 국가연합도 난센스이며, 동독의 민주화가 선결돼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했다.

즉, 미래 경제 협력의 모든 걸음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속에서 설계돼야 하며, 매우 복잡한 방정식이기도 하다.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협력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체제 유지를 돕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개방과 교류, 인권 문제를 경제적 지원이나 협력과 연계하는 것은 최소한의 장치다. 반면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퍼부어 북한 정권을 고립 상태로 되돌리지 않도록 속도와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대화 국면을 끌어내기 위한 정치 적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무엇을 요구하든 그것을 들어주기 위해 절치부심하겠다는 듯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것은 국민의 불안을 부추기고 민주국가로서 받을 평판을 해칠 뿐이다. 70년의 민주 발전 속에서 촛불로 정권을 바꾼 우리에게 세계 최악의 독재 정권이 내민 '우리 민족끼리'라는 수사는 더 이상 어떤 울림도 갖지 못한다. 그래야 촛불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3/20180513017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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