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이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북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나온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정상회담은 하루 일정이고 이틀로 늘릴 기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다는 것은 사전 조율에서 완전한 북핵 폐기 방안에 대해 상당 부분 합의점을 찾았다는 뜻이다. 주목할 것은 북한이 미국과 정상회담 사실을 처음으로 내부에 알렸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의 폼페이오 장관 접견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전하면서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보도한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기자가 회담 무산 가능성을 묻자 "내 생각에는 매우 성공적인 거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티스 국방장관 역시 "(미북 협상이)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낙관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당초 미·북이 정상회담 회담 날짜·장소 발표를 늦추면서 뭔가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특히 김정은이 며칠 전에도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언급하고, 미국 쪽에선 "단기간의 완전한 일괄 폐기"를 요구하면서 이런 불안감은 더 커졌다. 그런 가운데 미·북 양쪽에서 동시에 '만족' '성공적'이라고 하는 발표가 나온 것이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양측이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으며 일이 잘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북한은 과거 획기적 합의를 하고 실천 단계에서 약속을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이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북을 봉쇄 수준으로 압박하면서 실제로 군사 타격을 가할 수도 있는 미국이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날도 "올바른 방향으로 디딘 한 걸음이지만 완전한 비핵화가 최우선 과제" "단계적 비핵화 같은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강한 의지와 목표를 재확인했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합의 쇼'가 될 가능성이 그만큼 작다. 북한 역시 이번 회담이 깨졌을 때 가해질 더 강화된 제재와 '완전한 북한 파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기대와 희망이 걸려 있는 것이다.

아직 미국의 '일괄 폐기'와 북의 '단계 조치' 사이에 어떤 접점이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단계적으로 폐기 절차를 밟되 그 시한을 1~2년으로 못 박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북이 과거처럼 국제사회를 속일 수 없는 분명한 합의가 미·북 정상회담에서 이뤄지면 한반도 평화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된다. 남과 북은 지난 1991년 상호 불가침과 정치·군사적 대결 해소, 화해와 교류·협력 증진 등 구체적 실천 내용이 담긴 기본 합의서를 만들었다. 공존(共存)과 통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 합의는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면서 깨졌고 한반도와 우리 민족은 북핵이란 먹구름 아래 묶여 있었다. 김정은이 이번에 핵 포기 결단을 내리고 실천에 옮긴다면 남북은 27년 만에 미래를 함께 써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에 깊이 관여한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 위원장 등 북쪽 관계자들과 얘기해 보니 이번 기회에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모델로 북한을 바꿔나가겠다는 의지가 확실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이 북에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베트남이나 중국 같은 정도의 개혁·개방으로만 가더 라도 남북은 함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갈 수 있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우리가 이룬 경제 기적을 북이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 과정에서 정권의 폭력성이 줄어들고 주민 인권이 개선되면 사실상 통일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김정은이 그런 결단만 내린다면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든 외교적으로든 무엇이든 북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10/20180510038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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