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7일 40여 일 만에 시진핑 중국 주석을 다시 만나 "관련 각국이 단계별, 동시적으로 책임 있게 (비핵화) 조치를 하자"고 '단계별 동시 조치'를 다시 강조했다. 과거처럼 북핵 폐기 과정을 길게 끌고 가면서 단계 단계마다 제재 완화와 지원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렇게는 핵 폐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북핵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김정은이 중국을 다시 찾은 이유는 미국의 강한 기류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존의 입장에서 더 강화된 '영구적 비핵화'와 함께 화학·세균무기까지 폐기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대북 제재로 궁지에 몰린 김정은으로선 손에 쥔 카드가 다 없어지기 전에 중국을 찾아가 '보험'을 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이란 핵협정에 대해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며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 불가'하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다시 평양으로 갔다. 북핵 협상이 막바지 고비에 이르렀다. 이제 북핵 폐기 전선은 결국 미국식 '단기간 내 일괄 폐기·보상' 대(對) 북·중식 '긴 기간 내 단계적 조치·보상'의 구도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 북핵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많은 사람이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과거와는 달리 미국의 단기간 내 핵 일괄 폐기·보상 방식이 통할 듯한 기류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또 김정은식 시간 끌기 방식이라면 당장 한·미 내에서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우선 목표가 '북핵 폐기'가 아니라 '회담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방식대로 하면 실제로 북핵이 폐기될 가능성이 높고 북한식으로 하면 또 과거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핵 폐기의 원칙에 관한 한 미와 북의 중간에서 중개만 할 것이 아니라 단기간 일괄 폐기가 불가피하다고 북을 설득해야 한다. 핵만 버리면 북이 그토록 원하는 제재 해제, 미·북 수교, 대북 지원이 모두 이뤄진다. 비핵화를 약속한 북이 단기간에 일괄 폐기 못할 이유가 뭔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9/20180509033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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