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林東源)씨의 머리와 가방속에 무엇이 새롭게 채워졌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남북간 특사의 임무와 성과는 발표문안보다는 그 이면에 더욱 많이 숨겨져 있게 마련이다.

이번 특사 방북은 남북 당국간 대화를 재개하고 미·북 대화에도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돼 왔다. 임 특사는 4일 저녁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 및 만찬을 포함해 5시간여 동안 자리를 함께하면서 9·11 테러사태 이후 미국의 달라진 세계전략과 이에 따른 한반도 정세, 이에 대한 북한의 바람직한 대응자세 등에 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임 특사는 또 김 대통령의 친서와 미·일 정부의 대북 메시지도 전달했다고 한다. 이산가족 상봉재개 같은 구체적 합의 못지 않게 특사로서의 중요한 임무는 최고통치권자의 의중을 가감없이 전달함으로써 전반적 문제의 타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인 만큼 ‘5시간의 대좌(對坐)’는 발표문 이상의 함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특사 방북과정에서 북한이 우리측에 대해 ‘주적론(主敵論)’ 폐기를 요구하면서 ‘민족공조’와 ‘한·미공조’ 중 택일하라는 식의 위협적 태도를 보인 것은 앞으로의 남북대화에 여전히 암운(暗雲)을 느끼게 하는 유감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북한당국의 태도는 평소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해석할 때도 유독 ‘자주’만을 강조함으로써 ‘외세공조’를 폐기하라는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곧 한·미 합동군사훈련 폐지와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의미한다.

임 특사는 북한의 이러한 인식과 주장에 대해 어떤 입장을 피력했는지에 대해 소상히 밝혀야 한다. 그 밖에도 남북간에 논의되고 합의된 사항들에 대해 최대한 투명하게 밝힘으로써 국내외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의혹을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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