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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친구보다 敵을 가까이 두라"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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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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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관점 제공하며 나태함 막는 유용한 敵
친구보다 더 가까이 두고 '긴장' 놓지 말아야
같은 나라 안에서 서로를 敵으로 몰고 反目해선 안 돼
 

박성희 이화여대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박성희 이화여대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살면서 기대 밖의 도움을 받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친한 사람이 늘 도움을 주는 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배반을 하거나 상처를 주는 것은 주로 친한 사람들이다. 겉으로는 친하지만 속으로는 적이나 다름없는 사람(friendemy)도 있다.

다정(多情)이 오히려 병(病)이 될 수 있음을 규명한 미국의 사회학자 마크 그래노베터의 사회연결망 이론은 유명하다. 그는 실제 실업자의 27.8%가 '약한 유대관계' 덕에 직장을 구한 반면, 친한 친구의 도움을 받은 실업자는 16.7%에 그쳤다고 밝혔다. 친한 친구들은 우선 나와 인맥을 공유하니 도움이 안 되고,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혹은 편견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런 1차적 인맥을 벗어나야 새로운 세계와 만남이 가능하다.

오히려 적(敵)이 더 쓸모 있을 때가 적지 않다. 적은 다른 관점과 세계관을 제공해 자기 성찰을 도와준다. 긴장을 주어 나태하지 않게 한다. 그래서 적과 함께 일하면 좋은 일도 있다. 사업에서 경쟁자와 협력하는 능력(coopetition)은 업계 전체를 살릴 수도 있다. 영화 '대부(代父)'의 주인공도 "친구보다 적을 가까이 두라(Keep your enemy closer)"고 조언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분단선을 넘어 남쪽의 대통령과 웃음 띠며 악수를 했다. 2018년 봄은 이 장면과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이다. 현 정부의 슬로건대로 '새로운 평화의 시작'일지, 아니면 또 다른 헛발질이 될지는 시간만이 답해 줄 것이다. 유튜브에 떠 있는 정상회담 만찬장 분위기는 마치 오랜 친구들이 만난 동창회처럼 파안대소와 정겨운 술잔이 오간다. 적(敵)과의 만남이 저렇게 감동적이라면, 남북의 지도자들은 빼어난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아마 문정인 특보만 아니었다면 그 감동은 좀 더 지속되었을 것이다. 의도이든 실수이든 문 특보가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 말이 전해지며 누가 친구이고 적인지 잠깐 멈추고 다시 살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그 말이 대통령 뜻이 아니라며 즉시 선을 그었지만 중·고 교과서에서 '자유'와 '유일한 합법정부'가 논점으로 떠오르는 상황이고 보면 그리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야당 대표는 초대받지 못한 자리, 거기서 남과 북이 기울인 술잔이 '우리끼리'를 다짐하는 친구의 술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문제가 좀 달라진다. 북한의 '주체'가 그러하듯, 남북의 '우리끼리'도 글로벌 사회의 생존전략으로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친구'란 '도움이 되는 사람'을 의미했다. 중국과 일본은 선택의 여지없이 역사·지리적으로 가까운 우리 이웃이다. 함께 살다 보니 친밀한 적도 있었지만, 그들로부터 받은 고통 또한 적지 않다. 남과 북은 한 핏줄이면서 서로 죽고 죽인 역사를 갖고 있다. 분단 이후에도 북한은 도발과 위협을 멈추지 않았고 핵무기도 개발했다. 북한의 핵 포기는 위협요소가 제거되는 것일 뿐 우리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남북 경제협력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당분간은 우리가 북을 도와야 할 일이 더 많다.

우리 역사상 전혀 기대 밖의 곳에서 도움을 받은 경험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연합군이 생면부지의 땅에 와서 피를 흘려준 일이 거의 유일하다. 그 일로 미국은 북한의 '철천지원수'가 되었지만 남한에는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때 연합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나는 김정은을 수령으로 모시며 살고 있을지 모른다.

아픈 역사를 딛고 남과 북이 화해하며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헤어진 가족들은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철천지원수'였던 북한과 미국도 곧 정상회담을 갖는다. 북한이 미국에 손을 내밀자 그 육중한 중국이 움직이는 걸 우리는 보았다. 남북은 '혈맥'으로 이어져 있고, 한국과 미국은 '동맹', 중국과 북한도 '혈맹'이다. 이렇게 피와 힘의 균형으로 끈끈하게 얽힌 한반도에서 '우리끼리' 산다는 건 어림없는 일이다.

친구와 적 사이에서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건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적을 가까이 두라는 말은 '긴장을 놓지 말라'는 조언이다. 친구를 내치고 적(敵)을 그 자리에 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 서로를 적(敵)으로 몰고 반목하는 정치, 시야가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뺄셈의 외교로는 나라 반쪽도 지키기 어렵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7/20180507015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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