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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또 하나의 '남북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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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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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국제부 기자
정지섭 국제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기 열흘 전 한반도에서 8000㎞쯤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의 지도자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南)과 무스타파 아큰즈 수반(北)의 만찬 회동이었다. 면적은 한반도의 25분의 1, 인구는 울산과 비슷한 122만명인 키프로스는 우리와 '남북 분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스계와 터키계(8대2)로 나뉜 주민들은 종교·언어·문화 차이로 반목(反目)했다. 1974년 친(親)그리스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터키가 자국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 개입하며 나라가 쪼개졌고, 1983년 전체 영토의 37%가 친터키 성향의 '북키프로스(미승인국)'로 독립 선언했다. 강대국 세력 다툼이 분단 원인 중 하나라는 게 우리 처지와 비슷하다.

분단 뒤 상황은 더욱 그렇다. 유엔이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판문점 같은 완충 지대를 만들고, 통일 협상을 중재했다. 2004년 통일 국민투표까지 치르며 분단 종식을 코앞에 뒀지만 부결됐다. 남북 키프로스는 지금까지 40여 차례 '통일 회담'을 열었고 정상끼리도 여러 번 만났다. 그러나 통일 국가 체제 등을 두고 입장이 팽팽히 맞서 통일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번에도 남북 지도자는 "솔직하고 열린 태도로 의견을 교환했다"는 의례적 발표만 했다.

키프로스의 상황은 교훈을 준다. 대화를 통한 평화통일 달성이 결코 쉽지 않으며, 그런 사례도 없다는 점이다. 나라 규모가 작고, 분단 시기도 짧으며, 유엔이 적극 관여해와 통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져 왔던 키프로스도 분단 반세기를 앞두고 있다.

반면 분단을 극복한 나라들의 통일 과정엔 공통점이 있다. 강자(强者)가 힘으로 약자(弱者)를 이긴 뒤 없애버리는 폐멸(滅)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1990년 독일 통일은 서독이 소멸된 동독의 영토와 주민을 흡수하는 과정이었다. 1975년 베트남 통일은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끈질기게 무력으로 공략한 끝에 패망시키면서 달성됐다. 1990년 전격 성사된 예멘 통일은 '평화·대등 통일'의 선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준비 없는 성급한 통합은 내전 발발→외세 개입→테러리스트 기지화라는 연쇄 재앙을 불러오며 '안 하느니만 못한 통일' 이 됐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보인 화기애애함을 보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평화통일의 기대와 희망이 커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봐야 한다. 낭만적·감상적 통일몽(夢)에 취해 긴장과 힘을 푸는 어리석음(愚)을 범한다면 약자 입장에서 '폐멸적 통일'을 당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과거와 현재 분단국들이 보여주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3/20180503037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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