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개최 날짜 계속 바꾸고 장소 후보지도 왔다 갔다 해
北, 작년 하반기 美에 대화 타진… '대도박'이 北 '사기극' 막을 수도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미·북 정상회담을 약 한 달 앞두고 워싱턴에선 거의 매일 관련 회의가 열린다. 하지만 참신한 분석이나 전망을 기대하긴 어렵다.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unconventional)' 예측 불허의 대통령이 모든 것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예측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토론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르고 어쩌면 트럼프 자신도 모를 것"이라는 농담 섞인 결론으로 끝난다. 전문가들의 상상력이 트럼프가 만들어내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북한이 국제사회를 속여온 과거를 반복할 것"이라며, "북한을 비핵화시키겠다는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대도박'처럼 보인다"고 했다.

미·북 정상회담 준비는 최근까지도 대통령과 극소수 참모, 정보팀만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진척 사항이 잘 공개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돌발적·즉흥적으로 대응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전략적 대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상대를 교란하려는 '의도된 혼란'이란 것이다.

트럼프는 회담 개최 날짜를 계속 바꾸고 있다. 5월에서 6월로 미루더니, 다시 5월 말, 또 6월이 됐다. 회담 장소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후보 지역이 두 곳에서 다섯 곳으로 늘었다 또 2~3곳으로 줄기도 했다. 이미 결정해놓고 적절한 발표 시점을 협상 중이란 얘기도 있다. 미리 장소가 알려져 경호·치안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언제 결정될지 몰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흥행 유발 효과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 일정을 급박하게 바꿀 수 있는 여지가 그리 크지 않다. 회담 장소 역시 1~2주일 전에 결정해 경호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회담 장소를 둘러싸고 김정은의 낡은 비행기가 어디까지 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지만, 실은 수천명 기자가 일할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세기적인 이벤트는 대규모 미디어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올해 초부터 한국의 도움으로 급물살을 탄 미국의 대화 모색은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됐다. 북한이 물밑 채널을 통해 미국에 대화 의사를 타진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으로선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도발하면서 동시에 대화하고 싶다는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취임 이후 트럼프가 요즘처럼 의욕적으로 보였던 적이 없다. 평생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인 '거래'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이 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에서 "나는 거래(deal) 자체를 위해 거래를 한다"며 "큰 거래일수록 좋다"고 했다. 성공하면 '인류를 핵전쟁 위협에서 구한 영웅'이 될 수 있는 미·북 정상회담은 그가 좋아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유세 집회에서 '노벨평화상'을 뜻하는 '노벨!' '노벨!'을 외치는 지지자들을 바라보는 트럼프의 표정은 대선 승리 순간보다 더 뿌듯해 보였다. 그의 오랜 소망이 '노벨 평화상'이었다는 얘기도 했다.

트럼프는 거래를 할 때 "가망이 없다고 절망하지 않으며, 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노(No)'라는 대답은 아예 대답으로 간주하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가 김정은으로부터 비핵화를 하겠다는 '예스(Yes)'를 끌어낼 수 있을까.

트럼프만 보면 "도대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던 사람 중에서도 북핵과 관련해선 "저러다 큰일을 해낼 수도 있겠다"며 기대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트럼프의 대도박'이 '북한의 사기극'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3/20180503038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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