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이후]

美北회담 장소로 연일 거론… 정치적 흥행 최대화 판단 작용한 듯

청와대도 "평화의 이정표" 추천
美국무부서 청와대 비공개 방문… 억류 미국인 송환 생중계도 가능
백악관, 여전히 싱가포르 등 고민

외교街 "클린턴·오바마가 못한 일 내가 해냈다는 이미지 얻길 원해"
 

청와대와 백악관이 동시에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미·북 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고, 청와대는 "판문점 회담은 평화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와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은 1일 청와대를 비공개 방문해 미·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개최와 남북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백악관은 여전히 판문점 외에 싱가포르 등 2~3곳을 후보로 올려놓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각 개최 장소의 장단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알고 있다"며 "최종 결정은 이제 트럼프의 손에 달렸다"고 했다.

◇트럼프 "판문점 개최, 한국과 논의"

트럼프 대통령은 4월 30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미·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개최를 묻는 질문에 "전적으로 가능하다. 매우 흥미로운 생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싱가포르를 포함해 다양한 나라를 살펴보고 있다"면서도 "DMZ(비무장지대)의 평화의집, 자유의집에서 개최하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점이 있는데 일이 잘 풀렸을 경우 내가 제3국이 아니라 현장에서 엄청난 축하 행사가 열릴 바로 그곳에 있게 된다는 점"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야기했고, 문 대통령을 통해 북한과도 연락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개최는)빅 이벤트가 될 기회"라고도 말했다.

판문점에서 각종 이벤트성 행사가 포함된 정상회담을 개최하면 정치적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행사가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쇼맨'답게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빅이벤트' 장소로 DMZ를 시사했다"고 전했고, CNN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도 판문점을 최적지로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개최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분단을 녹여내고 새로운 평화의 이정표를 세우는 장소로는 판문점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했다.

◇'억류자 송환 생중계' 등 극적 연출 가능

판문점은 당초 미국 정부가 선호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당국자는 3월 말쯤 "판문점은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후보지"라고 했었다. 판문점은 1976년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한 '도끼 만행 사건'의 현장이었으며, 여기서 회담을 개최하면 상당 부분 공로를 한국에 넘겨주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달 18일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은 제외했다"고 전했다.

이런 트럼프가 생각을 바꾼 데는 최근 전 세계로 생중계된 남북 정상회담 장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과 통화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평화의집'과 '자유의집'이란 명칭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에 대해 '상징적(symbolic)'이란 표현을 썼다"며 "분단의 가장 상징적 장소 아니냐"고 말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연내 종전(終戰) 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위한 남·북·미 3자 회담'을 언급한 만큼, 미·북 회담까지 판문점에서 열리면 '종전 임박'이란 신호를 보낼 수 있다. 판문점에 회담과 기자회견 등을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고, 인근에 미군기지인 캠프 보니파스가 있어 경호가 용이한 것도 장점이다.

특히 미·북은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정상회담 계기에 석방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이들을 직접 인도받는 장면을 생중계로 연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강력한 퍼포먼스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 당국자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미국인들에게 '클린턴·오바마가 못한 일을 나는 해냈다' '내가 미국을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했다.

◇미·북, 남·북·미 연쇄회담 관측도

판문점이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 확정되면, 외교 일정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 이전인 5월 중순 미국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하면, 한·미 정상회담도 서울에서 할 가능성이 생긴다. 남·북·미 정상회담도 자연스럽게 판문점에서 연달아 열릴 수 있다. 다만 미·북 회담 자체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인 만큼, 연쇄회담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2/20180502001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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