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2일 저녁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엔 긴장이 감돌았다. 북한이 이틀 전 연천 DMZ에 고사총을 쏘아대고 우리 군(軍)이 대응 포격에 나서면서 일촉즉발의 군사 대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북측 고위 대표단은 이날 오후 접촉을 제의해놓고 약속 시간(오후 6시)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이 바뀐 것 아니냐?" 술렁이던 우리 측 의문은 30분 뒤 풀렸다. 일주일 전 북한이 새로 발표한 '표준시'에 맞춰 대표단이 등장한 것이다.

▶북한은 2015년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표준시를 30분 늦춘다고 밝혔다. 일본을 지나는 동경(東經) 135도 대신 한반도 중앙 127.5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일제(日帝) 청산'을 명분으로 걸었다. 우리 표준시 기준은 구한말부터 127.5도와 135도를 오가다 1961년 135도로 확정했다. 영국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경선(經線)을 기준으로 경도 15도를 벗어날 때마다 1시간씩 시차가 난다. 영토 중간선 등을 기준 삼아 30분 단위 시차가 나는 나라는 10곳 안팎이다. 
 
[만물상] '평양 시각' 폐기

▶김정은이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평화의집 대기실에 서울 시간과 평양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가 두 개 걸린 걸 보니 가슴 아팠다"면서 '평양 시각'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판문점 회담 주요 이벤트는 첫 만남 오전 9시 30분, 기념식수 오후 4시 30분, 만찬 오후 6시 30분처럼 대부분 '30분'에 맞춰져 있었다. '평양 시각'으로 맞춰준 것같다.

▶판문점 회담을 보도한 북한 '노동신문' 1면 상단엔 '주체 107(2018)년 4월 28일'이란 활자가 박혔다. 북한식 연도 표기 방식이다. 북한은 1997년 7월 김일성의 출생 연도인 1912년을 주체 원년(元年)으로 정하고, 서기(西紀)도 괄호 안에 넣어서 병기하도록 했다. 그해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일부터 모든 신문과 방송은 물론 문서, 화폐에도 주체 연호를 쓴다. 이 시대착오 집단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그게 정말 가능할지 알 수 없다.

▶북한이 3년 만에 표준시를 한국 시각으로 통일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중국같이 땅덩어리가 큰 나라도 분열을 막는다며 베이징 기준 표준시로 통일하는데, 같은 한반도 안에서 남북이 각각 다른 표준시를 쓴다는 게 부자연스러웠다. '평양 시각' 포기처럼 "핵무기가 다 없어졌다"는 비핵화 종료 선언을 김정은 입으로 듣는 날이 올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9/20180429019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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