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석 정치부 기자
전현석 정치부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회담장인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우리 군 의장대를 사열(査閱)한다. 북한 지도자로선 처음이다. 장소가 협소해 의장대 규모를 줄이고 인공기 게양과 북한 국가 연주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국빈에 대한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군 의장 행사로서의 의미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의장대원들은 '주적(主敵)'이라고 배워 온 북한의 김정은에게 '받들어 총'을 해야 한다.

국방부는 보도 자료에서 "역사적 유래, 국제적 관례 및 과거 사례 등을 바탕으로 상호 존중과 예우를 다하기 위해 의장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 "상호주의에 입각해 결정된 것"이라고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각 2000년과 2007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군 의장대를 사열했기 때문에 김정은에게도 당연히 똑같이 하는 거란 얘기다.

하지만 '상호 존중과 예우' '남북 간 상호주의'에 앞서 군이 6·25 분단의 역사와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국군 전사자와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의문이다.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으로 우리 국군 13만7800여명이 전사(戰死)했다. 민간인 사망자는 37만명이 넘는다. 북한은 휴전 이후에도 비무장지대(DMZ)에서 507건의 도발을 했다. 아웅산 폭탄 테러, KAL기 폭파 사건에 이어 1·2차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대형 군사 도발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우리 국민과 장병도 숱하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공식 사과하거나 유감을 표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6·25는 남측이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안함 등 각종 도발과 테러에 대해선 "남조선 모략극"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6·25 정전협정 장소이자 유엔사 관할인 판문점에서 의장대 사열을 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는 정치적 논란을 의식한 듯 "냉전시대에도 미·소, 미·중 간 정상회담 때 의장대 사열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국가들은 어느 일방의 잇따른 군사 도발로 다른 나라의 국군과 국민의 목숨을 앗아 간 사이가 아니었다. 2000년11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서로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을 방문해 의장대 사열을 했는데, 이는 국교 정상화·무역협정 체결 등 10년 넘게 양국이 쌓아 올린 신뢰의 결과물이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군 의장대 행사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북의 위협에 맞서 국가 안보를 지켜야 할 군이 굳이 정상회담장에 의전 들러리를 서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김정은에게 '받들어 총'을 하는 군의 모습, 아무리 곱씹어봐도 불편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6/20180426034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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