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이슈 > 개성공단
남주홍 "北 고도의 심리공작전 펼치는데 문 정부는 서둘러"
조선  |  @chosu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2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남주홍 경기대 교수가 3일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4일 “현 정부는 우리가 북핵 문제의 중재자라고 하는데, 우리는 최대 이해 당사자이며 핵 인질의 직접적인 피해자”라고 했다. 남 교수는 이날 서울 이촌동 자택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가 왜 중재자이며 선의의 제3자인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남 교수는 “평화를 위한 대화는 환영하지만, 안보문제는 고도의 위기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며 “현재 문재인 정부는 지나치게 서두르는 느낌이다”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김정은이 대화를 서두르고 마음이 앞서가고 있고 이를 잘 이용해야 한다”며 “철저히 한미 공조를 해야하며 북한이 지난 30년 동안 회담을 통한 고도의 공작전으로 우리를 교화하려 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의 최근 대화, 평화공세를 “고도의 심리 공작전”이라고도 했다.

남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리비아식 모델을 걱정하는데 이라크 모델도 유념해야 한다”며 “이라크가 핵 사찰 요구를 거부하자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나”고 했다.

남 교수는 “황장엽씨가 생전에 햇별정책으로 북한의 숨통이 트인 것에 대해 개탄스러워했는데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미국은 대북제재로 김정은을 코너에 몰아놨는데 남북 화해와 협력으로 제재가 흔들릴까봐 걱정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창식 대북제재 예외조치가 지속될까봐 우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남북 회담을 통해 회담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도 방법”이라며 “쓰라린 경험적 교훈을 빨리 겪는게 낫다”고 했다.

남 교수는 최근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해 ‘단계적 비핵화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말해 핵 동결, 즉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아래는 남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지난달 20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예술단 실무접촉 종결회의에서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윤상 음악감독(오른쪽)과 북측 수석대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통일부 제공
-올해 들어 외교무대 전면에 나서는 등 김정은 행보가 심상찮다. 우리 예술단 앞에서는 농담도 했다.

“김정은은 서두르고 있다. 마음이 앞서갈 수밖에 없다. 권력을 잡고 보니 핵은 완성이 안 돼 있는데, 경제는 형편없고 인민군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다. 대북 제재가 최고조에 이르자 초조함도 생겼을 것이다. 제2, 제3의 고난의 행군이 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북한 내부에서 급격하게 확산됐다. 작년 8월 김정은이 괌 포위사격을 언급했는데, 나는 이를 보며 드라마틱한 자충수를 뒀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괌을 포위사격하란 말은 미국으로선 제2의 진주만 폭격을 생각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이 발언 직후 ‘북한은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고,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완전한 파멸(Completely Destroyed)’을 언급했다. 김정은이 여기서 ‘아차’ 했을 것이다. 그만큼 김정은은 몰려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그렇게 절박한 상황인가.

“김영남이 지난번 방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에 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북측 간부가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우리가 먼저 회담의 문을 두드렸다. 그만큼 북한이 절박하고 급박하다는 것이다. 고(故) 황장엽씨는 생전에 ‘북한이 잘 살 것 같으면 내가 왜 왔겠느냐’고 했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숨통이 트인 것에 대해 개탄스러워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은 대북제재로 김정은을 코너에 몰아놨는데 남북 화해와 협력으로 제재가 흔들릴까봐 걱정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창식 대북제재 예외조치가 지속될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이제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이야기도 나올 것이다. 북한도 돈이 필요하지 않겠나.”

-최근 이뤄진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 것으로 보나.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를 전제로 중국에게 북한 체제의 안전보장을 약속받았을 것이다. ‘한미가 단계적 조치를 취하면 북한도 비핵화 하겠다’는 말에는 ‘북한 체제의 안전보장은 중국만이 할 수 있다’는 시진핑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반도 운전자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뜻이다. 단계적 비핵화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쉽게 말해 핵 동결, 즉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 해달라는 요청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핵 동결을 추진했던 제네바 합의 수준으로 이번 협상 역시 추진하자는 뜻인데, 마치 그때와는 다른 것처럼 요구 조건을 줄이거나 문구를 바꿀 수는 있다.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밀무역 감시도 완화해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중국이 밀무역을 허용한다면, 그런 부분까지는 미국이 막기는 어렵다. 북한 장마당에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중국산인데 북한 간부들도 요즘은 모든 기초 생필품을 장마당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대북제재로 장마당이 올스톱됐으니 김정은이 매우 다급해졌을 것이다.”

-어쨌든 대화 국면이 조성됐다.

“북한의 숨통을 풀어주는 사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날 것이다. 당장 이번 중간 선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정기적인 정치 행사 때문에 일관된 대북정책을 쓸 수 없다는 약점을 꿰뚫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부터 김정은까지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국의 ‘정치 시계’를 보고 있다. 북한은 중요 직책에 노련한 프로들을 앉혀 놓고 그들이 죽거나 총살당하지 않는 이상 바꾸지 않는다. 아주 무서운 점이다. 김영철은 한국 국정원장과 비슷한 직책인 정찰총국장을 7년간 한 뒤 통일전선부장이 됐다.”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왼쪽)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철이 이번에 우리 기자들 앞에서 ‘내가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종의 희화화를 했다. 우리를 얕잡아본 것이다. 우리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정상회담에서 우리 입지를 국제적으로 강화할 수 있고,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는데 큰 압력도 될 것이다. 북한에 할 말을 하지 않으면 위기관리 주도권을 북한에 넘기는 것처럼 된다. 김영철은 지난 2008년 국방위 정책실장 시절에도 통일전선부 관할인 개성공단에 와서 우리 기업인들에게 ‘나가라’고 한 적이 있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숙청한 뒤 그 틈새를 타고 올라온 게 김영철이다. 중국 관료들은 장성택이 없으니 북한에서 대화할만한 상대가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북한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3대에 걸친 일관적인 정책을 유지해왔다. 지금도 과거와 똑같은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의사결정 과정은 이전과 다르다. 김일성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휘둘렀다. 그림자도 못 밟을 정도로, 마치 황제 같은 권력이었다. 김정일은 은둔·숙고형이다. 아버지의 지도를 20년간 받았는데 몸이 안 받춰줘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술을 자주 마셔서 걸음걸이도 불안정했다. 키가 작았고, 굽 높은 구두를 신어서 오래 서 있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과시하는 행동이나 돌출 행동을 잘 하지 않으려 했다. 김정은은 정면 돌파형이다. 선대보다 카리스마는 없지만 나름대로 젊은 카리스마를 만들려고 하는데, 김정은이 하는 행동을 보면 직감적으로 ‘충동적으로 서두르면 사고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 정권은 대북 특사단이 가져온 김정은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한다는 내용은 공동위기 관리 측면에서 발전적인 성과라고 생각한다. 공식 대화 채널이 확보되고 정상 차원의 극적 타협을 모색할 수 있게 된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군사위협을 해소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라고 한 것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와해를 겨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김정은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했는데, 사실 선대의 유훈은 ‘핵무장’이었다. 김일성은 스스로 핵무장을 서둘렀고, 김정일에게는 핵개발을 완료하라고 했다. 실제로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 핵실험을 하지 않았나. 그다음 세대 김정은의 목표는 핵 실전배치를 완료하는 것이다. 그들은 핵이 아니면 미국이나 국제 사회에 큰소리칠 수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우리 정부는 관념적 사고에 머물러 대단히 비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것 같다. 남북미 회담을 거론하거나 정상회담을 여러 번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 우리가 중재자라고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왜 중재자인가. 중재자라고 하면 국외자라는 느낌이 든다. 또 우리가 과연 선의의 제3자인가. 우리는 최대 이해당사자이고 핵 인질 피해자다. 미국이 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중재자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번 대북 특사단 접견 때 김정은은 시종일관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했다.

“북한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지난 6·15 공동선언처럼 ‘외세 배제’와 ‘우리민족끼리’라는 단어를 넣고 싶어할 것이다. 미국에 '손 떼라'는 얘기다. 북한의 일관된 대남정책 노선이다. 김영남, 김영철, 리선권이 대북 특사단에게 ‘6·15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6․15 공동선언에는 핵 문제와 관련한 언급도 전혀 없고 ‘우리 민족끼리’ 원칙만 담겼다. 김정은과 대북 특사단의 대화 내용을 보면 대화 앞뒤에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이 들어 있다. 여기에 방점이 찍힌 듯하다. 마식령 스키장 방문도, 금강산 관광도 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논리다. 양측은 예술단 공연을 통해 그런 분위기를 잡는 것 같다. BBC가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외교적인 천재거나 나라를 팔아먹은 공산주의자’라고 했는데, 지나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문 대통령이 ‘북한에게 발목을 잡혔다’라거나 ‘우리민족끼리의 함정에 빠졌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자체가 치명적 실수라는 비판도 있다.

“정상회담 성사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에서 당사자끼리 접촉이 없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또 회담의 목적 중 하나는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인데, 회담을 통해 이를 이룰 수 있을지 국민들이 평가할 기회가 될 것이다. 또 핵 문제는 남북 둘이서만 해결할 수 없고, 반드시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인식시키는 계기도 된다. 사실 정상회담을 제대로 하려면 특사에 앞서 밀사가 가야 한다. 밀사가 비공개로 상대의 진의를 파악한 다음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베테랑이 가서 ‘지금 북한 상황이 얼마나 어렵나’ ‘북한에서 실리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명분이 필요하다’ ‘우리는 국민적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는 식으로 진의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공개적인 채널에서 상대방과의 대화, 협상은 통일부, 외교부 등이 하면 충분하다. 다만, 회담은 투명하게 추진돼야 한다. 국민 공감대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을 국민들이 다 보고 있다. 그리고 회담을 통해 상대를 빨리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그 이후 북한이 1차 핵실험(2006년)을 했다. 회담만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운 셈이다. 이처럼 우리도 빨리 상대를 맞닥뜨려 상대에 대해 배우는게 낫다. 쓰라린 경험적 교훈을 빨리 겪는게 낫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가 3일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문재인 정부가 정상회담 합의문의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겠다고 했는데. 이것 역시 투명성을 위한 절차로 볼 수 있나.

“남북이 합의한 내용에 대해 국민 공감대가 있어야 하고 국제 공조에서도 이탈하면 안 된다. 북한에 대한 대량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전제로 해야 한다. 만약 추상적인 수준의 합의에 머무른다면 국회 비준이 무슨 의미가 있나. 또 5월이 되면 지방선거 열기때문에 국회 소집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면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어떤 내용들이 오가야 하나.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한미의 평화적 조치에 따라 비핵화를 단계적, 동시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북중 합의 연장 선상에서 선(先) 포괄합의, 후(後) 단계적 추진으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원칙과 정면 배치되기 때문에 큰 혼란이 예상된다. 남북 정상회담은 북핵 위협 해소가 기본 목적인 만큼 의제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한다. 또 철저히 한미가 공조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한미 공조가 안 되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회담에서 북한은 구체적인 것은 미국과 이야기하겠다면서 남북 간 교류협력 등 핵 문제 이외 주제를 앞세울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이 추상적 선언 수준의 비핵화 원칙에 그치면 미북 정상회담이 늦춰질 위험이 있다. 북한이 우리에게 뭘 요구하는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회담을 통해 우리의 선의와 북한의 진의를 교환한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에게 협상은 고도의 심리 공작전이다. 30년 동안 일관되게 우리를 교화·순화하고 동화하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에서 ‘내가 북한 이익을 대변하려고 미국과 많이 싸웠다’고 말한 적 있다. ‘자위력 의미에서 북한 핵개발은 일리 있다’고 하기도 했다. 당시 이 말을 들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국의 조야는 매우 당황했었다고 한다. 이번에도 미국은 우리에게 누구 편인지 확실히 하라면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할 것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내정자도 그래서 등장했다고 본다.”

-북한이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공작전을 펼친다는 말인가.

“남북 양측은 대화 등 여러 방법으로 서로를 향해 ‘레짐 체인지(체제 변화·Regime Change)’를 시도하고 있다. 시간이 우리 편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북한을 무서워해서도 안된다. ‘북한을 자극하면 전쟁이 난다’는 얘기는 국내 정치적용 논리일 뿐이다. 이 논리는 햇볕정책을 정서적으로 뒷받침하는 논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햇볕정책이라는 것은 결국 평화를 돈 주고 사자는 것 아닌가.”

-‘북한을 자극하면 전쟁 난다’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조선 인민군은 전쟁을 하기 어려운 상태다. 미국이나 한국에 대해 도발을 하기에도 역량이 부족하다. 작년 11월 미국 3개 항모전단이 동해안에 왔는데 과거에 이런 적이 없었다. F-22도 북방한계선(NLL)을 훨씬 넘어 북한에 들어갔는데 북한은 포착도 못 했다. 평양 고위층이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고 그동안 미국을 너무 많이 건드렸다는 분위기도 생겼다. 이런 분위기를 ‘북한을 자극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모를 리가 없다. 우려되는 점은 남북 정상회담 후에 이들의 고정관념이 국민들 사이에서 더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정말 불쌍해서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느냐’는 감성과 정서가 앞서갈 수 있다. ‘통일 되면 핵은 우리 것’이라는 극단적인 얘기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햇볕정책의 포용 정신은 이어받아야 하지만 방법과 수단은 이어받으면 안 된다. 포용의 대상도 북한 주민이지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가 아니다.”

-우리가 북한 원점을 타격하면 반격할 능력도 없다는 뜻인가.

“북한이 전쟁을 결심하지 못한다는 것은 6·25식의 정면, 전면전을 못한다는 뜻이다. 즉 육·해·공군, 전(全) 전선에서의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북한은 역량이 있어서 치고 빠지는 게 아니다. 정치적 결정에 따라 도발을 하는 것이다. 천안함 폭침 같은 경우도 정치적 결정으로 보복 도발을 한 것이지 이를 전면전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전쟁을 막으려면 과감히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로마 격언이 있다. 제한적 도발은 맞받아쳐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또 북한은 한미 연합군과의 전면대결을 두려워한다.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김일성, 김정일 유훈 중 하나는 미군과 전면 충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6·25 이후부터 그랬고 도끼 만행 사건 때 더 생생하게 깨달았다. 다만, 그래도 유념해야 할 점은 우리와 싸운 경험이 있는 노련한 사람들이 요직에 있다는 것이다. 앞서 김영철 이야기를 했는데, 김영철이 통일전선부장이 되면서 김영철의 오른팔인 장길상이 정찰총국장에 올랐다. 아직도 김영철이 정찰총국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햇볕정책의 정신은 이어받아도 수단과 방법을 이어받으면 안 된다는 건 무슨 뜻인가.

“북한을 이야기할 때는 여러 가지를 다 봐야 한다는 뜻이다. 통일부는 북한을 동족으로, 국방부·국정원은 북한을 적(敵)으로 봐야 국가가 유지된다. 통일부는 북한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외교부는 6자회담 등 대화 협상으로, 국정원은 대북 공작으로, 국방부는 북한이 NLL을 넘어오면 무조건 반격해야 한다는 얘기다. 외교·안보 정책은 각 분야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어느 한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는 게 아니고 동시에 가야 한다. 금강산 관광을 가면서도 북한군이 NLL을 넘어오는 것에는 맞대응하지 않았나. 이것이 국가 안보의 위기관리 원칙이다.”

-우리 정부는 ‘리비아식 핵 해법이 적절치 않다’는 북한 주장을 옹호했다.

“북한은 리비아가 핵을 포기한 뒤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다며 ‘리비아식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카다피는 핵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리비아 내전 때문에 사망했다. 튀니지의 오렌지 혁명이 리비아까지 번진 것이다. 북한 스스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김정은이 등장한 2012~2013년도 사이에 북한 지도부는 이미 리비아뿐 아니라 시리아, 이라크, 이란, 예멘까지 모든 사례를 연구했다. 북한은 이라크 모델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라크가 핵 사찰 요구를 거부하자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나. 과거처럼 북한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식의 특별사찰은 안 되는 게 최근 미국이 요구하는 CVID다. 의심되는 핵심 지역을 모두 개방하고 선택적으로 공개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을 과연 김정은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다.”
 
김정은(왼쪽 둘째)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맨 왼쪽)가 지난달 26일 시진핑(왼쪽 셋째) 중국 국가주석과 시 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나란히 만찬 전 환영 행사가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핵 협상이 장기화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북한의 비핵화 과정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미국이 요구하는 CVID는 현실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요구한다. 추가 핵실험 금지, 핵 관련 시설 신고, 단계적 핵 시설 폐기, 핵연료 반출 등의 전 과정을 IAEA의 특별 사찰을 통해 실시간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향후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단계마다 북한에 대한 보상이 있을 것이다. 북한이 완전히 개방하지 않고 과거처럼 은닉, 은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 협상이 장기화되면 핵 동결 수준에서 북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시간을 끌려고 하는 최악의 경우에는 미국이 제한적이나마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남북, 미북 정상회담에서의 나올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무엇이라고 보나.

“‘탐색’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비핵화 타임 테이블은 실무회담서 하는 것이지만 이는 전적으로 미북 정상회담 결과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비핵화의 타임테이블을 제시하라고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가 검증되기 전까지는 보상은 없다고 할 것이다. 북한은 회담을 통해 미국이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 정부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일부 경제적 손실을 보겠지만, 미국과 잘못되면 모든 것을 잃는다. 주한미군이 철수한다고 하면 안보 뿐 아니라 경제도 크게 흔들린다. 우리 증시가 바로 폭락할 것이다. 미국은 현재 FTA 카드만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를 제재하는 방안) 등 온갖 비장의 카드를 다 들고 있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 이후의 정세를 어떻게 전망하나.

“평화를 위한 대화는 환영하지만, 안보문제 협상은 고도의 위기관리 전략을 요구한다. 그런데 현재 문재인 정부는 지나치게 서두르는 느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 당사자가 될 주요 인사의 교체로 중장기 청사진이 아직 불확실하고 중국은 실질적인 중재자, 운전자역을 적극적으로 자임하고 있다. 특히 한미 양국의 내부 정치적 일정에 따른 논쟁, 분란으로 양측의 ‘북핵피로증후군’이 북한의 ‘체제피로증후군(김정은 체제에 대한 북한 내부의 반발)’을 앞서간다면 상황은 점차 북측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미국은 북핵의 현 수준 동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 대가로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감축, 대북 평화협정 같은 빅딜을 할 가능성도 있다. 추상적인 선(善)의 추구가 북핵 위협이라는 구체적인 악의 제거보다 우선시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과 일본의 변수도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북중 정상합의를 계기로 쌍중단, 쌍궤병행을 요구하며 사드 철수를 주장할 것이고 일본은 나름대로 지분 참여를 요구할 게 분명하다. 이 문제로 앞으로 미국, 중국, 한미일 간에 상당히 변수 많은 담판이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위기관리 주도권을 북한과 중국이 이끌어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남주홍 경기대학교 교수 : 국가안전기획부 안보통일보좌관(대북특보)를 거쳐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원장, 국가정보원 특별보좌관, 주 캐나다 대사관 대사, 국가정보원 1차장을 역임했다. 김일성 사망시에는 안기부 대북특보로서, 김정일 사망 직후와 김정은 후계체제 출범시에는 국정원 대북정보 총책임자인 1차장으로서 북한 지휘부의 움직임을 생생히 지켜봤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05/2018040502335.html

조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Tel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SITE_MANAGER
Copyright © 2013 NK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