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용 정치부 기자
안준용 정치부 기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역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북(訪北)한 일본 총리다. 그가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두 시간 반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준비한 기간만 약 1년이었다. 그 사이 물밑에서 북·일 당국자 간 비공식 접촉이 100여 차례 진행됐다. 총리 비서관은 총리의 단호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김정일과 악수할 때 팔을 내밀 각도까지 연구했다.

정상회담 결과로 김정일은 미사일 실험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과거사를 사과하고 경제협력 방식의 배상을 약속했다. 양국은 수교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교는 무산됐다. 김정일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자 일본 내 여론이 악화됐고, 북핵 위기가 다시 불거졌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납치자 대신 북한산 송이버섯만 선물로 들고 왔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2004년 5월 다시 김정일을 만났지만 그해 11월 돌려받은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이 가짜로 판명돼 또 역풍을 맞았다.

정상회담은 치밀하게 준비해도 늘 많은 변수가 생긴다. 상대가 예측하기 힘든 북한이라면 더욱 그렇다. 올 초부터 급히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은 아직도 비핵화 의제 등 변수가 많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예고했던 정상 간 '핫라인' 통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현재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홍보'다. 25일에는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 회담장 인테리어만 12분 동안 소개했다. "2018년의 상징으로 정상회담 테이블을 2018㎜로 했다"고 했고, 푸른 카펫을 깔면서 "한반도 산천의 아름다운 푸른 기상을 회담장 안으로 들여 회담이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전통 창호를 소개하면서 "견고한 남북 신뢰 관계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희망하는 의미"라고 자평했다. 브리핑 제목만 떼면 '전시회 홍보 책자'로 착각할 정도다. 청와대는 전날도 정상회담 만찬 재료를 일일이 나열하며 메뉴에 '스위스의 추억' '운명적인 만남' 같은 제목을 붙였다.

정부가 정상회담을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회담의 겉모습만 크게 소개하면서 '장밋빛 기대'만 키우면 정작 회담의 본질과 목표가 흐려진다. 한국·미국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는 '북한 비핵 화'라는 핵심 의제가 제대로 다뤄질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남북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 미·북 회담도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방한한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서울에선 워싱턴과는 다른 설렘과 흥분이 느껴지지만 전략이 부족한 회담은 위험할 뿐"이라고 했다. 기대만 키우고 성과를 못 내면 실패가 더욱 뼈아픈 법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5/20180425034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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