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다급한 건 '정권 안보'… 핵개발로 '정권 불안' 逆風
정권 떠받치는 250~2500명 '金씨 왕조'에 충성 않을 수도
對北 통제 추동력 견지하며 북한 실질적 변화 이끌어내야
 

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학
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학

오늘은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D-1이다. '과거 70년 동안 이루지 못한 성과가 이번 회담에서 나올 것'이라는 고대(苦待)와 '북한은 변하지 않았고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북한 핵 포기 불가론의 주요 근거는 갖고 있던 핵을 폐기하거나 핵이 원래 없어 정권이 몰락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일찍 핵 개발에 착수해 핵을 갖고 있었더라면 미국의 침공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2003년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핵 포기를 선언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까지 정권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어쩌면 2011년보다 훨씬 더 일찍 종식됐을 수도 있다.

비핵화를 할 경우 장기 집권 체제가 끝날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간 비핵화 합의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비핵화 경험을 보면, 비핵화가 오히려 정권 유지에 도움 될 수 있다는 게 확인된다.

국가 간 합의 타결과 이행은 쌍방 모두 얻는 게 있을 때 이뤄진다. 현재 한국과 미국에는 북한 핵 개발로 야기되는 '국가 불안'이, 또 북한에는 대북(對北) 제재로 초래되는 '정권 불안'이 각각 존재하고 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양측의 목적은 모두 안보 추구다.

한쪽이 '국가 안보'라면, 다른 한쪽은 '정권 안보'일 것이다. 정권 불안은 안과 밖 모두에서 온다. 핵무장은 밖에서 올 군사적 위협을 줄일 수는 있어도, 안에서 올 정권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 오히려 핵무장을 막기 위한 고강도 경제 제재가 이뤄질 경우 정권 불안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 정권이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비핵화가 상대적으로 가장 나은 길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 비핵화로 나가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무릇 모든 정권은 자신을 지지하는 '지배연합(支配聯合)'을 만족시켜야 유지된다. 민주 정권의 지배연합은 국민 다수가 포함된 큰 규모인 반면, 독재 정권의 지배연합은 일부 국민에 불과한 소규모다. 민주 체제의 정권은 다수가 함께 공유할 정책을 통해 국민을 만족시키지만, 독재 체제에서는 정권 유지를 위해 소수의 지배연합 구성원에게 현금 같은 것을 제공하는 게 효율적인 권력 유지 방안이다. 통치 자금 또는 충성 자금이 북한 같은 독재 국가에서 훨씬 더 중요한 이유다.

북한 정권의 인구 대비 지배연합 크기는 민주국가에 비해 현격하게 작다. 통일부의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 최신판에 수록된 북한의 주요 생존 인물 수는 293명이다. 부에노 데 메스키타 미국 뉴욕대 교수가 주도한 연구팀은 2500만 북한 주민 가운데 250명에서 2500명에 불과한 군부(軍部) 지도자, 당정(黨政) 간부, 김씨 일가(一家) 등이 북한 정권을 떠받치고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즉 북한 정권의 지배 집단 크기를 북한 전체 인구의 1만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본 것이다.

과거 김정일 정권은 북한 국내총생산(GDP) 120억달러의 10%인 12억달러를 정권 유지에 사용했고, 그 결과 지배연합의 핵심 구성원 2000여 명은 적어도 평균 50만달러(약 5억4000만원)씩 받았거나 썼다는 분석이 있다. 그 정도의 혜택을 받은 지배연합 구성원은 지도자에게 충성할 동기(動機)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소수의 지배연합 구성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유재(私有財)를 주로 활용하는데, 그 재원은 해외와 국내에서 모두 조달된다. 해외에서 외화를 버는 근로자들에게 거둬들이는 금액은 한 해 40억~50억달러이며, 이들이 북한 군부와 경찰, 정부부처 등에 바치는 상납금이 연간 1억~2억달러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미국 주도의 강력한 대북 제재 압박으로 북한이 이런 통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이는 지배연합의 충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붕괴되는 중대 위기다.

무엇보다도 지배연합 구성원은 궁핍한 생활을 감수하면서까지 권력자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치 자금이 고갈 상태로 가고 있다면, 정권 지도자 로서는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변화는 북한 지도자의 통치 스타일보다는 대내외 정책으로 표출될 것이다. 27일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그 변화의 실체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앞으로 전개될 여러 협상에서 주고받는 식의 합의안을 모색하되 북한 정권이 되돌아가지 않도록 대북 통제의 추동력은 견지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5/20180425035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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