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김정은의 올 3월 방중에 이어 시진핑의 6월 방북설이 나오는 2018년 북·중 관계는 여러모로 1972년을 닮았다. 시 주석 취임 후 5년간 거듭된 북의 도발과 그에 따른 제재로 원수처럼 지내던 북·중이 최근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단번에 밀착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 기간 서로 문을 닫아 잠갔던 46년 전 북·중은 '미·중 수교 회담'이라는 외부 충격을 시발점으로 문턱이 닳도록 왕래했다. 당시 환갑이던 김일성은 1972년에만 세 번 중국에 갔다. '미 제국주의에 함께 맞섰던' 중국이 '철천지원수' 미국과 손잡으려는 상황에서 김일성이 느꼈을 당혹감이 짐작되고 남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이 무대의 중앙에 서 있는 사실은 똑같다. 다만 미국의 주상대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바뀌었다. 1972년 중국은 미·중 수교에 대한 북한의 불안감을 달래려 대대적인 군사·경제 원조에 나섰다. 헨리 키신저가 베이징을 들락거리던 1971~75년 중국은 101개의 '턴키' 프로젝트(공장 건설과 운영까지 맡아주는 것)를 북한에 선물했다.

그중엔 고사포 레이더 제어기 공장, 어뢰정 레이더 공장, 잠수함 조립 공장도 있었다. 중국 화동사범대 션즈화 교수의 저서 '최후의 천조'를 보면 북한은 당시 '주한 미군 철수' 같은 조건을 요구하며 국익(國益) 극대화를 꾀했다.

핵을 든 북한이 미국과 담판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 지금 중국의 원칙도 국익 극대화다. 중국이 미국은 원치 않는 '단계적·동시 대응'이라는 북한의 북핵 전략을 지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북 갈등 속에서 중국의 역할과 지분을 키우겠다는 셈법인 것이다.

베이징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중국은 지금 바둑 돌을 들고 판을 뒤흔들 착점을 찾고 있는 '쥐서우부샤(擧手不下)'의 형국"이라고 했다. 예컨대 중국 온라인에는 '북핵 동결과 북한 영구 중립국화' 시나리오가 떠돈다.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므로 북·중 접경인 압록강과 훈춘에 각각 북핵 봉인고를 두고 5개국이 공동 관리하자는 얘기다.

북한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중국 좌파, 북한을 버리자는 우파, 남북통일을 반기지 않는 주변국이 모두 솔깃해할 만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검토된 것인지 여부를 떠나 중국이 언제든 판을 흔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국의 한 국제 문제 전문가는 "얼마 전까지 김정은의 장성택 총살, 김정남 암살에 몸서리치던 한국인들이 지금은 김정은을 비핵화와 통일의 동반자로 생각하며 흥분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핵 외교 당사국 중 가장 순진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는 급물살 치는 한반도 상황에 대비하는 전략과 냉정함을 갖추고 있는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2/20180422019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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