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격동의 시간'] 18년만에 美·北 최고위급 접촉

김정은 평양공연 관람 때 언급한 "복잡한 정치일정"은 美특사 회담
美, 빠른 핵폐기 가능성 타진한 듯… 폼페이오 訪北에 협상 급진전
트럼프 "5월 또는 6월초 회담", 김정은 "朝·美회담" 첫 공식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1일 오후 부인 리설주와 함께 우리 측 예술단 공연이 열리는 동평양대극장을 찾아 "4월 초 정치 일정이 복잡해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오늘 늦더라도 공연을 보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당시 김정은의 관람은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이었다. 이 때문에 '복잡한 정치 일정'을 두고 외교가에서 온갖 추측이 나왔다. 17일(현지 시각) 미 언론들의 보도로 이 정치 일정이 무엇인지 드러났다. 미 국무장관 지명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이 즈음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폼페이오의 방북과 관련, "한때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미·북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생생한 증거"라고 했다.

18년 만의 미·북 최고위급 교류

폼페이오는 이달 초 CIA 국장 전용기를 타고 오산 미 공군기지를 거쳐 평양 순안공항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미 언론들에 따르면 이번 방북은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주선했으며, 폼페이오는 백악관이나 국무부 관계자 없이 CIA 요원만 데리고 갔다.

김정은과 폼페이오의 만남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던 2000년 이후 18년 만에 이뤄진 미·북 간의 최고위급 접촉이다.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미국인 억류자 석방을 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갔을 때는 김정은을 만나지 못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8일 미·북 정상회담 제의를 전격 수용했다. 5일 후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에 지명한 뒤 2~3주 만에 폼페이오를 김정은에게 보낸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만남을 수용한 순간부터 폼페이오에게 모든 실무 책임을 맡기는 방안을 구상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거의 매일 정보 현안을 브리핑하는 폼페이오에 대해 "나와 뜻이 맞는다"고 말해 왔다.

폼페이오 방북 후 정상회담 공식화

폼페이오는 김정은과의 면담에서 미·북 정상회담의 성사 조건이었던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하고, 미국이 원하는 '빠른 핵 폐기'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폼페이오의 방북 직전인 3월 25~28일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단계적 동시 조치를 통한 비핵화 실현' 등을 언급했었다. 폼페이오의 방북은 그런 내용을 포함한 김정은의 비핵화 의사를 미국이 직접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트위터를 통해 폼페이오의 방북 사실을 소개하며 "정상회담의 세부 사항을 현재 논의 중이다. 비핵화는 세계는 물론 북한에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폼페이오의 방북을 전후해 미·북 양국은 정상회담을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TV로 생중계된 각료 회의에서 "아마도 다음 달 또는 6월 초에 그들(북한 김정은)과 만나는 것을 여러분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한 달 이상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침묵하던 북한도 10일 관영 매체를 통해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조·미 정상회담'을 언급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을 공식 언급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에게 체제 보장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는 평양 방문 직후인 지난 12일 미 상원 외교위 인준 청문회에서 "김정은은 종이 한 장(협정문) 그 이상을 원할 것"이라며 "그는 체제 안정을 위한 보장 방안을 추구할 것이고 , 이 때문에 북한은 비핵화라는 수십년간 누구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책무를 떠맡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비핵화 방안'을 두고서는 여전히 의견 차가 크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폼페이오도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의) 포괄적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는 환상은 없다"며 "두 정상은 합의 도달이 가능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9/20180419002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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