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행 국제부 차장
정시행 국제부 차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만나 "미국이 우리 체제를 확실히 보장하고 전면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이는 명백한 '리비아 학습 효과'다.

북한은 2011년부터 "리비아 방식은 (미국이) 안전 담보와 관계 개선이란 사탕발림으로 무장해제한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리비아 정권이 미국의 확실한 담보 없이 핵무장을 풀었다가 무너졌으니, 자신들에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란 얘기다.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서방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그는 1970년대부터 미국 여객기 폭파 같은 테러를 저지르면서, 자신의 자녀들은 영국 교육을 받게 하고 프랑스 사치품을 즐기며 스위스 비밀 금고와 지중해의 부동산 등에 국부(國富)를 빼돌려 숨겼다.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빈곤과 부패를 성전(聖戰)으로 포장해 국민을 통제했고, 그 핵만 팔아넘기면 미국이 자신의 왕국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카다피가 2003년 핵 포기를 선언하자 국제 제재가 풀렸고, 미국·유럽과의 수교 후 재건 사업이 시작됐다. 미국은 리비아 내 인권 문제 등에 눈을 감아줬다.

그러나 핵 포기 결정이 '만능열쇠'가 아닌 게 금세 분명해졌다. 대량살상무기 폐기와 검증 과정은 길고 복잡했고, 경제 보상은 생각보다 더디고 규모도 적었다. 국민들의 불만도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삶이 나아진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만성화된 독재 체제는 뇌물 없이는 굴러가지 않았고, 외자 유치의 과실은 상층부끼리 나눠 먹었다. 비밀경찰의 감시 속에 언론·야당 탄압이 만연했다. 카다피는 핵만 포기했을 뿐, 부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1년 중동·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 시민 혁명이 리비아를 덮쳤다. 혁명의 물결은 친미와 반미 정권, 핵을 가진 나라와 아닌 나라를 가리지 않았다. 카다피는 시민 반군을 미사일과 화학무기로 살육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들끓자 유럽 나토군이 시민군에게 전투기를 제공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체제 보장' 약속 때문에 마지막까지 미적댔다. 시위 발발 8개월 만인 10월 20일, 카다피는 고향 시르테의 땅 굴에서 시민군에게 총살됐다.

카다피의 최대 실수는 핵 포기가 아니라, 국민을 탄압하고 착취하면서 밖에서만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려 한 것이었다. 강대국이 잠시 바람막이가 돼줄 순 있어도, 자유와 풍요를 원하는 국민의 열망을 꺾어가며 독재 정권을 유지시켜줄 힘이나 자격은 없다. 체제 존립은 남이 아닌 국민의 지지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김정은은 알아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2/20180412036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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