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해결 없는 관계 개선은 '사이비 정책'으로 변질 우려
'햇볕정책' 원론적으로 옳지만 핵 포기 없으면 성공 힘들어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2007년 10월 4일, 필자는 평양의 백화원 초대소 영빈관에 있었다. 그날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정상선언에 합의했고, 김정일은 성대한 환송 오찬을 마련했다. 배속김치가 전채(前菜)로 나오고 칠면조구이와 왕새우찜에 이어 전복즙상어날개와 쏘가리찜, 비둘기철판구이와 송이버섯 등이 등장했다. 푸짐하고 화려한 점심 메뉴였지만 남북 정상선언은 휴지 조각이 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남북 관계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린다. 곧이어 미·북 정상회담까지 예정돼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이럴 때야말로 실패에도 대비하는 치밀함이 있어야 한다. 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을 목격했던 필자의 경험에 비춰 보면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는 장밋빛 낙관으론 해결되지 않았다.

이른바 '햇볕정책'은 '다방면의 교류 확대를 통해 상대 국가의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정의된다. 햇볕정책을 종종 영어로 '인게이지먼트(engagement·관여)로 옮기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필자는 이런 햇볕정책이 과거에도 옳았고 지금도 정당하며 앞으로도 올바른 정책이라고 믿는다.

단 햇볕정책은 교류 협력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교류 협력이어야 한다. 또 햇볕정책은 일체의 무력도발을 불용(不容)하는 튼튼한 안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북한의 현상 변경이나 무력 증강을 용인하는 유화(宥和)적 교류 협력은 결코 북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만남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민족주의에만 기대는 감성적 교류가 아니라, 남과 북이 서로 필요로 하고 윈-윈(win-win)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호혜적인 교류와 협력을 조급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하는 게 진정한 햇볕정책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또 다른 햇볕정책이 존재하고 있다. 남북 관계 개선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햇볕적(的) 북핵 접근'이 그것이다.

북핵 상황의 악화로 햇볕정책의 작동이 불가능해지자 거꾸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는 '햇볕적 북핵 해법'이 등장한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구상은 전형적인 '햇볕적 북핵 접근'이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남북 관계 개선을 이루고 미·북 정상회담까지 성사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햇볕적 북핵 접근은 지금 성공하기 어렵다.

우선 김정일의 북한과 김정은의 북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김대중·노무현 시기는 북이 핵을 동결했거나 개발 중이었고 지금의 북은 핵무기와 투발 수단을 실제로 손에 쥐었다. 김정은의 북한이 표방하는 핵·경제 병진노선은 한 손에 핵을 쥐어야만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북한 노동당의 공식 노선이다.

어느 경우에도 김정은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기는 불가능하다. 비핵화는 선언하더라도 최종적 비핵화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다. 햇볕적 북핵 접근이 그나마 작동하려면 한·미(韓美) 공조가 필수 전제조건인데, 지금 한·미 공조 가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필자는 고통스럽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교류 협력으로 북한을 변화시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원론적 햇볕정책은 여전히 정당하다. 그러나 남북 관계 개선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햇볕접근은 이제 필자는 포기하고자 한다. 과거의 추억에만 머무는 고장 난 레코드판이자 사이비 햇볕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2/2018041203640.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