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간 공들여 '공공외교 교두보' 만들었는데, 한순간에 물거품]

갈루치 "부적절한 개입 탓… 南北·美北회담 앞둔 시기에 한국정부, 자기 발등 겨냥하나"
38노스는 美연구원이 독립 운영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 이사장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 이사장
한국 정부가 오는 6월부터 예산 지원 중단을 결정한 미국 워싱턴의 유일한 한반도 전문 싱크탱크인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가 결국 문을 닫게 됐다. 한국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10여년간 약 200억원을 투입해 마련한 워싱턴의 공공 외교 교두보가 '코드 논란' 끝에 사라지게 된 것이다.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 이사장은 9일(현지 시각) AP통신에 학문적 연구에 대한 "완전히 부적절한 개입"을 받아들일 수 없어 오는 5월 연구소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보수 성향인 구재회 USKI 소장 등에 대한 교체 요구를 거부하고 결국은 폐쇄의 길로 가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한국 정부는)은 인사 조치를 요구할 어떤 권한도 없었다"며 "(발리 나살 SAIS) 학장은 이들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고 했다.

갈루치 이사장은 또 "지금은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기"라며 "(연구소 폐쇄로) 당신(한국 정부)의 발등을 이보다 더 조심스럽게 겨냥할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북한 비핵화 담판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한국 정부가 연구소 폐쇄로 자신의 발등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주장한 회계 보고서 불투명과 구 소장의 장기 집권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에 증거를 요구했으나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AP통신은 한국 언론이 보도한 문재인 정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을 언급하기도 했다.

초대 USKI 사무총장을 했던 주용식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본지 통화에서 "지난해 한국 측에서 SAIS에 회계 처리를 문제 삼아 내부 감사를 요구했고, SAIS에서 요청에 따라 감사했지만 아무 혐의가 없었다"며 "이 때문에 한국의 회계 불투명 주장을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발리 나살 SAIS 학장은 이날 갈루치 이사장과 구 소장을 불러 5월 11일부로 USKI를 폐쇄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SAIS 인사처는 이날 USKI 전체 직원들을 상대로 연구소 폐쇄에 관해 설명하고 재취업 알선 등 학교 측의 지원 사항을 소개하는 설명회도 열었다. 최근 한국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 중단 공문을 받고, SAIS 측에서 서둘러 연구소 폐쇄를 결정한 것은 미 노동법 규정상 한 달 전에 사전 통보를 해야 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USKI 관계자도 "가급적 빨리 구직 활동에 나서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USKI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는 맥아더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200만달러 재원을 마련해 독립 연구소로 살리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38노스는 앞으로 공동 설립자인 조엘 위트 USKI 선임연구원이 독립 운영을 책임질 것으로 전해졌다. 38노스는 북한 핵 시설에 대한 꾸준한 위성사진 분석으로 북한의 핵실험 등을 사전에 탐지하는 데 상당한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당초 USKI 측은 이날 한국 정부의 예산 지원 중단 조치에 대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지만 이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SAIS 측이 폐쇄를 결정한 만큼, 기자회견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주용식 교수는 "앞으로 한국학 자체가 한국 정부의 관제 학문으로 치부될 수 있다"며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수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USKI를 폐쇄하는 대신 SAIS에 한국학 교수를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1/20180411001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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