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에 바란다' 이벤트서 댓글 예시문 軍비하 논란
"휴전국가에서 정부가 할소리냐" 네티즌 반발에 다른 예시로 바꿔
 

'남북 정상에 바란다' 이벤트
통일부는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맞아 페이스북에 네티즌 대상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공고를 지난 6일 띄웠다. 남북 정상들에게 전달할 희망 사항, 정책 제안 등을 댓글로 남기면 추첨해 문화상품권을 주는 행사다. 통일부가 공고문에 예로 든 댓글이 '군(軍) 비하' 논란을 불러왔다. '남북 정상이 금강산 정상에 같이 올라요' '원조 냉면 투어, 평양에서 함흥까지' 같은 글 사이에 '군대 가기 싫어요'가 들어 있었다.

게시물을 본 한 네티즌은 '우리나라는 명백히 휴전 중인 국가인데, 어떻게 정부기관이 군 복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대놓고 공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네티즌은 '정부기관인 통일부에서 이 같은 예시를 제시하다니 제정신이냐'고 썼다. '설령 통일이 돼도 군대는 필요한데, 이제 군대를 해체하겠다는 것이냐'는 사람도 있었다.

'군대 가기 싫어요'는 '평화를 바란다'는 것을 말하려다 부적절하게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네티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군과 관련된 정부의 최근 모습 때문이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한도현(43)씨는 "최근 순직한 공군 조종사 영결식에 여당과 청와대 관계자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청와대는 천안함 폭침 주역이 누군지도 제대로 말 못한다. 군 홀대가 아니고 뭐냐"고 했다. 회사원 한정아(27)씨는 "동생이 군에 있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군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 같다"고 했다.

'남북 정상이 금강산 정상에 같이 올라요'라는 예시글에도 비판 댓글이 달렸다. '금강산에서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피격된 사실을 벌써 잊은 것이냐'는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벤트에 제시된 예시들은 사전에 취합한 시민들의 반응을 추려 넣은 것"이라며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자는 게 이벤트의 취지였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고문 어디에도 제시된 예시들이 시민들의 반응이라고 명시돼 있지 않다.

통일부도 부적절함을 뒤늦게 깨달았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이벤트 공지엔 '군대 가기 싫어요'란 예시가 빠지고 '사이좋게 지내요'란 문구가 들어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논란이 된) 예시를 지적하는 댓글을 보고 블로그엔 문구를 바꿔 올렸다"며 "페이스북은 기술적으로 사진을 교체하는 게 불가능해 지우고 새로 올리는 수밖에 없는데, 이미 달린 댓글을 없앨 수 없어 놔뒀다"고 했다. 게시물을 확인한 국방부 관계자도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통일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이번 정부는 보수 정권보다 더 강력한 안보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며 "그런데 정부기관이 앞장서서 국방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안일한 안보관을 드러낸다면 국민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원은 "정부기관이 했다고 보기엔 결코 사소한 실수가 아니다"며 "통일부는 해당 게시물을 당장 내리고 사과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11/20180411000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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