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스탈린은 사상 최악의 살인마들이다. 그런데 그들 집권 시기에 그 앞에 온 외국 손님들은 상당히 영광스러워했다. 히틀러로부터 훈장을 받은 독일군 장군 크뤼벨은 "히틀러는 최면을 걸었다. 지적(知的)으로 히틀러보다 우월하면서도 이런 마력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크뤼벨은 포로가 된 뒤에도 히틀러를 묘사할 때는 구세주를 영접하듯 황홀해했다.('나치의 병사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수행한 한 대학 총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괜찮은 사람'으로 다가왔다. 좌중을 휘어잡는 탁월한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2005년 방북한 전직(前職) 대학 총장도 "국내외 지도자를 많이 만났는데 김 위원장만큼 가식 없는 지도자는 드물었다"고 했다. 김정일은 아웅산 테러, KAL 폭파, 김포공항 테러를 주도해 수많은 우리 국민을 죽였다. 지금 북핵이라는 암덩어리도 그가 만든 것이다. 그런 본색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위대한 지도자' 앞에 고개 숙이고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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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한 한국 가수는 평양 공연 중 갑자기 김정일 호출을 받고 전용 열차로 함흥까지 갔다. "봉투를 건네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울었어요. 너무 고마워서." 첫 남북 정상회담 때는 서울에 '김정일 멋있다'는 김정일 신드롬이 나타나기도 했다.

▶어제 돌아온 방북예술단의 한 가수는 "리설주님이랑 조금 대화했어요"라고 했고, 김정은과 악수한 다른 가수는 "악수조차 할 줄은 몰랐는데 너무너무 영광이었고요"라고 했다. 이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북한 주민이 듣다 발각되면 감옥에 간다. 감옥에 보내라고 지시한 사람이 김정은이다. 그런데 한국 가수들은 그와 악수하고 "영광"이라고 한다.

▶30대 초반인 김정은은 세습 왕조의 세 번째 왕이다. 연평도 포격을 한 장본인이고 제 고모부 등 수많은 사람을 고사총으로 박살 내 죽이고 화염방사기로 태워 없앴다. 외국 공항에서 이복형을 가공할 화학무기로 암살했다. 북한 주민들은 '인권'이나 '민주' '사랑'이라는 말도 제대로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악수해줬다고 한국 가수가 영광스러워하는 존재가 됐다. 독재자는 그 독재가 무서울수록 뒤에서 광채가 더 나오는 모양이다.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으니 제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말한다. 보통 사람은 그걸 카리스마라고 느낀다. 언젠가 진실이 드러나면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장면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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