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과 핵담판 실패하면 '군사옵션 명분' 갖는 셈"]

NSC·국무부·CIA 수차례 회의

美, 과거의 북핵합의 들여다보며 비핵화 도달까지 시나리오 검토
볼턴 안보보좌관, 9일 업무 시작
폼페이오 청문회는 12일쯤 열려
진용 갖춰지면 회담 준비 본격화
안보 관리들 "제재로 北 끌어내…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강인선의 워싱턴 Live]
오는 5월로 예정된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회담 준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북 정상회담을 위한 미·북 실무 접촉 준비를 이번 주말쯤 마무리하고 이후 북한과 접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북 정상회담 준비 과정을 잘 아는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미·북 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를 다룰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회담 절차에 대한 미국의 입장 정리는 4월 초가 지나면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북 실무 접촉은 한국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한국 특사단이 전한 김정은의 미·북 정상회담 의사를 전격 수용한 배경에 대해, 이 외교 소식통은 "전술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을 읽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목만 둘 줄 아는 사람의 눈으로는 바둑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나온 것과는 다른, 더 큰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소식통은 "북한도 한국도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북한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가 거론한 남·북·미 3국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이 소식통은 "미국은 일단 미·북 정상회담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워싱턴에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주도하에 국무부, 국방부, 재무부, 중앙정보국(CIA) 등이 참여하는 미·북 정상회담 준비 실무 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다. 지난달 27일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NSC가 다른 정부기관과 긴밀히 협력하며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NSC는 조정 역할을, 국무부는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는 판문점, 미국, 유럽 등 광범위하게 거론되지만 대부분 검토 차원일 뿐 유력한 후보는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한 지 3주가 넘었지만 워싱턴에서 여전히 회담 시기, 의제, 장소가 다 안갯속이다. 그중에서도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과 트럼프의 생각이 얼마나 다를지가 최악의 불확실성이다.

워싱턴에서 미·북 정상회담 준비가 본격적으로 불붙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 핵심 외교·안보 라인 대부분이 당분간 공백 상태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내정자는 오는 9일에야 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국무장관 내정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의 인준 청문회는 12일쯤 열릴 예정이다. 지나 해스펠 CIA 국장 내정자 청문회는 그 이후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에 직접 정상회담 의사를 전하지 않은 것도 상황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북핵 문제 전문가인 전직 고위 관리는 2일 "북한은 한국이나 중국을 통하지 말고 미국에 직접 대화 의사를 밝혀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으로 회담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뉴욕 채널 등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미·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서훈 국정원장·폼페이오 CIA 국장이 막후 채널을 가동해 대화 국면이 열렸던 것처럼 지금도 겉으론 조용하지만 실제로는 물밑 조율을 하고 있으리란 것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달 14일 펴낸 보고서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 현 상황이 과거 북핵 협상과 다른 점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더 진전된 핵·미사일 능력을 갖춘 북한이 협상에서 자신이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다. 둘째는 국가별 독자 제재를 포함한 국제적인 대북 제재가 북한에 훨씬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예방 타격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상황이다. 최근에 만난, 북핵 문제를 과거에 다뤘거나 현재 다루는 관리들은 "이런 차이가 북한을 대화에 나서게 했을 것"이라며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 알기 때문에 자꾸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고 했다.

만일 미·북 정상회담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비핵화에 대한 입장 차이로 실패할 경우 어떻게 될까. 이 외교 소식통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대화 노력까지 다 해보고도 안 되면 미국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명분을 갖게 되는 셈이다. 그때부터는 또 다른 옵션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빅터 차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 석좌는 2일 한 방송에서 "큰 카드(정상회담)를 미리 써버리면 정상회담에 실패했을 때 쓸 수 있는 외교적 방식이 더 이상 없다"는 점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들었다.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이 성공할 경우 미·북은 어떤 과정을 거쳐 비핵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트럼프 정부 안팎의 북핵 전문가들은 과거의 북핵 합의를 꺼내 들여다보고 있다. 이미 거론됐던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재가입, 검증, 핵 폐기, 국교 정상화, 평화협정 등의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은 이 각각의 단계를 실행하는 순서를 달리하거나 몇 단계를 동시 진행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어떤 경로를 밟을 것인지는 정상회담에 서 트럼프·김정은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달렸다.

워싱턴에 드리운 가장 큰 불안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예측 불가능성이다. 정상회담 연기설, 불가설이 나오는 것도 대부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감하게 미·북 정상회담에 합의하긴 했지만, 정상회담 먼저 하고 실무진이 세부 사항을 협상·조정해가는 톱 다운 방식에 어떤 복병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04/20180404001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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