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제의 중국과 한반도] [1] 북한 비핵화 어떻게 되나
다시 '北 형님' 된 중국 "한반도 비핵화 최대 불확실 요인은 미국"

'황제' 시진핑, 美와 패권다툼 속 한반도 적극 개입으로 돌아서
北·中관계 회복 본격화되면 제재 그물망 느슨해질 가능성 커
쌍중단·新6자회담 등 꺼내들며 北에 시간 벌어주기 나설 수도
中교수 "게임 최대승자는 김정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2기 벽두에 북핵 외교의 전면으로 돌아왔다. 시진핑의 장기 집권을 결정한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제안한 방중 카드를 전격 수용하면서 무대 위로 불려나온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빈 만찬 인사말에서 "우리의 전격적인 방문 제의를 전격 수락해주셨다"며 시 주석에게 사의를 밝혔다. 북한은 지난달 19일 스웨덴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리용호 외무상을 통해 중국에 방북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김정은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방문한 국가이다. 오는 5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때 '차이나 패싱' 우려까지 나온 것을 감안하면, 시 주석은 그의 방중으로 '황제' 체면을 살린 셈이 됐다. 시 주석은 김정은에게 "양국 관계 발전은 유일하게 정확한 선택으로, 그때그때의 사건에 의해 변해서도, 변할 수도 없다"고 했다.

시진핑 집권 2기 한반도 정책은 북·중 관계 악화를 방치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했던 집권 1기 때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김정은이 중국 방문을 제안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다, 미·중 간에 신냉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갈등이 격화되는 등 국제 정세 자체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만 총통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미국 방문을 자유화하는 대만여행법에 서명하는 등 대만 카드를 꺼내 든 데 대한 대응으로 시 주석이 북한 카드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왕장위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연합조보에 "중국이 김정은의 이번 방중을 빌려 말하려는 것은 중국의 협력이 없으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라며 "북핵 문제가 미·중 관계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북 정상회담 국면에서 중국이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시험과 한·미 군사훈련 동시 중단 카드) 등을 주장하면서, 단번에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단계적 동시 대응을 주장하는 북측의 이견을 중재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려 들 것으로 예상했다. 장관급으로 대표 위상을 격상시킨 새로운 형태의 6자회담이나 정전협정 당사국으로 구성된 4자 회담 등을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는 "북한 주장처럼 비핵화가 단계적인 과정으로 가야 중국이 주도권을 발휘할 공간이 생긴다"며 "미·북 회담에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맞교환하는 타결이 이뤄지면 중국이 차관급인 6자회담 대표를 장관급 등으로 격상시킨 '신(新)6자회담' 등을 제안할 것"이라고 했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뤼차오 교수는 "시진핑 주석 집권 2기에는 한반도 문제와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개입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10년간 북, 중 무역액 그래프
/일러스트=김성규

문제는 신6자회담 같은 중국 주도의 대화 틀이 과거 6자회담처럼 북한에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할 시간만 벌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시간을 벌면서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완성해 나간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길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최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수록 좋다" "북한은 시간을 벌려고 협상을 최대한 천천히 굴려가려고 할 것"이라고 한 것도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베이징의 한 중국 학자는 "북한이 5월 미·북 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먼저 방문하는 등 정교한 외교적 공세를 펴고 있다"며 "미·북 회담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오더라도 이것이 실제로 한반도 비핵화로 이어질지에 대해 중국 학계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1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의 가장 큰 불확실 요인은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미·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지만 워싱턴에서는 최대한의 압박 주장만 나온다"면서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안보 환경 개선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자신의 안보 이익에만 집중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험한 길(bumpy road)을 걸을 것"이라고 했다.

북·중 관계가 회복되면서 대북 제재의 그물망이 느슨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양국이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김정은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 해제 문제를 거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비핵화 이후 중국이 제공할 각종 경제 지원책과 인센티브 정도를 언급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만약 시 주석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대북 경제 제재를 완화해주기로 약속했다면 이는 미국 주도의 최대 압박 정책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중국은 그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당장은 북·중 간에 인적 교류 확대, 인도적 지원 강화 등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6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에게 "북·중 우호의 민의 기초를 단단히 다지고 청년 세대의 교류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베이징대 진징이 교수는 "김정은의 방중 분위기로 봤을 때는 중국은 유엔 안보리 제재 밖의 인적 교류나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 북한에 대해 전향적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북·중 관계가 악화됐을 당시 강도 높게 진행된 밀수 통제와 북한 근로자 추방 등이 느슨해지면서 제재 효과를 반감시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제재망이 이완되면 원유 밀수입과 수산물 밀수출, 북한 근로자의 중국 취업 등이 재개되면서 제재로 막힌 북한의 숨통이 틔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 외교가 소식통은 "드러내놓고 하는 제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북·중 국경지대 중국 행정기관들의 통제 수준"이라며 "북·중 관계가 회복되면 이런 행정적 통제가 크게 풀릴 것"이 라고 했다.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의 스인훙 교수는 지난달 28일 대만 중국시보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이번 방중을 통해 한편으로는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대북 제재를 완화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둔 카드를 확보하려 한 것"이라면서 "김정은은 그런 의미에서 한·미와 북한, 중국과의 게임에서 최대 승자"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03/20180403002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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