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 국제부 기자
노석조 국제부 기자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2013년 9월 일생일대 위기에 직면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에 대규모 군사 공격을 개시하려 한 것이다. 그해 초 오바마는 시리아군이 사린(sarin) 등 독가스가 장착된 폭탄을 반군뿐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사용한다는 인권 단체의 주장이 제기되자,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며 경고했다. 그런데 그해 8월 시리아 한 반정부 마을에서 1000여 명이 독가스 중독으로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유엔 조사로 시리아 정부의 소행이 밝혀졌고, 이에 오바마가 '행동'에 나서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서 "무력은 안 된다. 대화로 해결하자"고 했다. 오바마가 잠시 공격을 미룬 사이 아사드가 깜짝 발표를 했다. "화학무기 전량을 포기하겠다"고 한 것이다. 푸틴은 "시리아가 큰 걸 양보했으니 군사 개입을 접자"고 했다.

외교 해법을 선호하는 오바마는 이를 덜컥 승낙했다. 악명 높은 독재자 아사드의 손에서 화학무기를 '외교적으로' 빼앗는 협상이 '기적적으로' 타결된 것이다. 그해 노벨위원회는 이 협상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 노벨평화상을 안겨줬다.

오바마로선 뜻밖의 수확이었다. 사실 그는 시리아를 공격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전임 부시 정부와 달리 중동에서 미군 발자국은 없는 게 좋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군사 개입을 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서 푸틴의 중재로 아사드가 협상 테이블로 나와 준 것이다.

하지만 미 대선이 치러지고 오바마에서 도널드 트럼프로 정권이 교체될 무렵 시리아에 화학무기로 민간인이 학살되고 있다는 소식이 하나둘 나왔다. 협상용으로 잠시 착한 척했던 아사드가 다시 독재자 본색을 드러내고 화학무기 사용을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아사드는 오래전부터 그의 아버지처럼 정권 유지를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서슴없이 써왔다. 그에게 화학무기 포기는 '시간 벌기용'에 불과했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아사드는 협상 타결 후 미국 몰래 북한으로부터 화학무기 제조 물자를 건네받았다.

협상 당사자였던 오바마는 퇴임해 무대에서 사라졌고, 지금 그 자리엔 그와 전혀 다른 성향의 트럼프가 있다. 반면 오바마와 잠깐 손잡고 화(禍)를 피한 아사드는 보란 듯 다시 권좌에 앉아 화학무기를 쓰며 국제사회를 농락하고 있다.

독재자들은 잘 안다. 시간이 흐르면 대통령도, 정책도 바뀌는 민주주의 국가와 협상을 하면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걸! 시리아 못지않은 북한과 협상하는 우리 정부는 독재자의 전략을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단기적 반짝 성과를 위해 적의 술수(術數)를 눈감아선 안 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02/2018040202575.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