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시 헌법재판소 공보관' 배보윤 변호사]

"법률안도 차관회의, 법제처, 국무회의 심의 거치는데…
개헌안에 이런 절차 무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아"

'지방분권국가 지향한다' 헌법 조항 신설의 의도는?
地方 권한 확대 취지일까, 北연방제 위한 포석일까…
 

조국 민정수석

해외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26일) 전자 결재로 개헌안을 발의한다. TV 카메라 앞에서 조국 민정수석이 사흘간 홍보했던 개헌안이다. 내 눈에는 그럴듯해 보였는데, 배보윤(58) 전 헌법재판소 공보관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개헌안이 설령 통과돼도 위헌(違憲)이 될 겁니다. '대통령안(案)'이라고 해서 청와대에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 비서 업무가 아닙니다. 대통령안은 국가를 대표하는 행정부에서 만들고 반드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개헌안 설명도 민정수석이 아니라 법무장관의 소관입니다."

그는 1991년 사법연수원(20기) 수료 후 공채 1기로 헌법재판소 연구관이 됐다. 헌재에서 26년 재직 동안 5·18 특별법, 행정수도 이전, 호주제, 한·일 어업 협정, 대통령 탄핵, 통진당 해산 등 주요 재판에 참여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헌재 공보관 겸 총괄연구부장을 맡기도 했다. 헌법의 이론적인 면과 현실 적용 문제에 관해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법률안을 만들 때도 차관회의, 법제처 검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개헌안에 이런 법적 절차가 무시됐습니다. 만에 하나 통과돼도 헌재에 소원하면 100% 위헌 판결이 납니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 조국 수석은 법대 교수 출신이고 개헌안을 만든 팀 중에는 법 절차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이게 위헌 요소라면 체크 안 했을 리가 있을까요?

"정말 상식 밖입니다. 의견 수렴과 조율도 전혀 거치지 않았습니다. 공청회 한번 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의 참여와 토론을 거쳐 한 달여 만에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능력이 대단하거나 용감한 건지 아니면 무지한 건지, 헌법 규범력(規範力)의 엄중성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게 아닌지요. 1987년 헌법 개정 때는 각 정당의 개헌안, 헌법학자 중심의 개헌안, 대한변협의 개헌안이 나왔고 쟁점 조항별로 학자 및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쳤습니다."

―개정안 전문(前文)에는 '부마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의 민주이념'이라는 구절이 추가됐더군요. 야당도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이 자체도 논의 대상이지만, 그 구절 앞에 '4·19 민주이념'을 '4·19 혁명'으로 바꿔놓았습니다. 4·19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정리가 끝난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전문(前文)에 추가된 내용 중에서 또 주목할 게 있습니까?

"자치와 분권을 강화한 내용이 신설됐는데, 이게 개헌안의 핵심일지 모릅니다. 바로 제1조 3항에서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법률적 용어가 아닙니다."

―'법률적 용어'가 아니라니, 무슨 뜻인가요?

"국민주권(國民主權)주의를 담은 제1조는 매우 명확하고 핵심적인 이념 조항인데, '지향한다'는 단어는 내용과 범위 한계가 불분명합니다. '지방분권국가'는 현실에서는 '연방국가'를 의미합니다. 만약 이를 염두에 뒀다면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입법·사법·행정을 나눠야 합니다."

―개정안에는 '국회 입법권'을 명시했으니, 지금과 같은 단일 국가 체제를 말하는 게 아닌가요?

"하지만 다른 조항에서는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주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놓았습니다. 연방주의처럼 '두 개의 주권(dual sovereignty)'을 규정해놓은 거죠. 이런 혼란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공론화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지방의 자율성과 권한 확대를 위한 조항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고.

"대선 공약이 헌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방의 권한 확대를 위한 취지였다면 '지방분권국가'라는 용어까지 도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개정되면 중앙과 지방 간에 입법권과 사무 배정 문제를 놓고 혼란이 가중됩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지방정부는 북한이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안의 사전 단계'라는 주장이 나오는데?

"그런 의혹을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조항에 근거해 '남북한 연방제'를 승인할 정당성을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북한과의 연방제를 염두에 두고 했다면 나이브하거나 위험한 시도입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는 '통일전선전술'에 불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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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윤 변호사는 “대통령 영향력이 대법원장을 통해 행사되는 구조에는 전혀 고민이 없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일반 국민은 '연방제'에 대해 잘 모릅니다. 미국이나 독일처럼 연방제를 하자고 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정치적 이념과 체제가 같아야 연방제가 가능합니다. 공산전체주의인 북한과는 연방제를 할 수 없습니다. 통일 국면이 돼도 어느 한쪽으로 합쳐야지 연방제로는 갈 수 없습니다."

―개정안의 '토지 공개념'도 주요 쟁점입니다.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인데?

"공공성은 그렇다 쳐도 '합리적 사용'의 기준이 애매합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이는 개인이 결정할 몫입니다. 국가가 정하겠다면 명백한 위헌입니다. 이런 식으로 규제하면 당장 외국인들이 투자하겠습니까."

―토지의 소수 독점과 투기 현상을 해결하려는 경제정의 실현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 호황으로 인한 부동산 투기로 사회적 문제가 되자 공법학자들을 유럽에 보내 '토지 공개념'을 도입했습니다. '택지소유상한법'과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각각 '위헌'과 '헌법불합치' 등의 판결을 받았고, 그러다가 IMF를 맞아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자 '개발이익환수법'을 빼고는 다른 토지 관련 법은 폐지됐습니다. 이런 토지 공개념을 다시 들고 나왔으니 올드 패션도 아니고, 퇴영적·시대역행적입니다."

―'근로자'를 '노동자'로 용어를 바꾼 것에 대해 보수 진영은 불편하게 여기는데?

"노동권을 부각시켜 사회주의 냄새가 난다고 보는 것이지요. 용어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무원 노동 3권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조항입니다. 이 중 단결권 조항에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구절을 삭제해 정치 파업도 가능하게 해놓았습니다."

―공무원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추세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공무원은 국민 전체 봉사자이지 일반 노동자와 다릅니다. 이 때문에 신분 보장과 연금을 주고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는 겁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기본권 침해를 받았다'며 헌법소원을 내자, 헌재에서 '공무원은 공권력 주체이지 대상자가 아니다'라며 각하한 적 있습니다. 개헌안은 이런 현행 헌법 체계에 어긋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개정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헌법은 수호(守護) 의지가 중요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헌법 내용을 많이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시대에 너무 뒤처져 실효성 없는 조항만 최소한 개정하고, 대부분 기존 헌법의 해석으로 해결합니다. 이번 개헌안에서 또 놀라운 점은 '사회적 기본권 조항'을 대폭 늘린 겁니다. 현행 헌법에는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권리' '사회 보장은 정책으로 한다'는 원칙적인 조항만 있었는데, 이를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임신·출산 양육과 관련하여 국가 지원을 받을 권리'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 '건강하게 살 권리' 등으로 조목조목 나열해 놓았습니다."

―국민을 위한 복지국가를 실현하겠다는 선언적인 조항 아닐까요?

"미국·독일·프랑스 같은 선진국도 이런 식의 헌법 조항이 없습니다. 사회 정책은 예산 범위에서 하는 것이지, 이렇게 헌법에 명시해놓으면 청구할 권리가 생깁니다. '건강하게 살 권리'를 주장하면 병원 치료비를 국가가 다 대줘야 합니다. 이런 조항은 결국 국민을 속이는 짓입니다. 당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부각돼 개정 필요성이 제기된 것인데, 이상한 방향으로 개헌안을 내놓은 겁니다."

―대통령 권한과 관련해 '원수(元首)로서의 지위'를 삭제했고, 대통령 특별사면은 사면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했고, 국무총리가 행정부 통할 권한을 행사할 때 '대통령의 명(命)을 받는' 구절도 뺐다는데?

"대통령은 어차피 국무회의 의장이고 국군통수권자인데 그런 구절 뺀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한 것도 대통령 권한 축소에 해당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대통령의 인사권은 축소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핵심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 문제입니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대법원장이 헌법상 국가기관의 인사권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권분립에 어긋나고 국민주권주의에도 위배되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가 안 되는군요.

"대통령 권력과 연결된 대법원장이 사법부 전체 인사는 물론 대법관 제청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법률적 양심에 따라 간섭을 안 받고 판단해야 하는 법관이 그쪽 눈치를 보면서 관료화됩니다. 이뿐 아니라 대법원장은 헌법재판관, 중앙선관위원, 감사위원, 국가인권위원, 방송위원 선출에도 관여해왔습니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대법원장을 통해 행사되는 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개헌안에는 대법원장이 갖고 있는 대법관 추천권을 대법관추천위원회로, 헌법재판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 선출권 등은 대법관회의로 넘기는 것으로 했는데.

"대법 관추천위의 구성원 임명에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모양새만 그럴듯하지 제왕적 대통령 권한은 기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개헌안은 마치 '정치선언서' 같습니다. 요소마다 대통령 선거 공약, 현 정부의 기조, 좌파 정치 이념이 들어있습니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대해 국회는 찬반 표결만 할 수 있다. 수정할 수는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5/20180325020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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