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회담에 들뜬 한국과 달리 미국은 마지 못해 가는 분위기
北 비핵화 발표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 변수 감안하면 '예측 불허'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특사단이 전한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격 수용한 지 닷새 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해임했다. 지난 연말부터 경질은 기정사실화돼 있었다. 문제는 시점이었다. 북한과 대화를 앞두고 '대화파'를 쳐낸 이유에 대해 트럼프 정부의 전직 고위 관리는 "대통령 손에 쥐여 준 쓸 만한 정책 대안이 없어서"라고 했다. 지난 1년 동안 국무장관으로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틸러슨은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외교적 해법이 빛을 발하는 '대화를 위한 공간'을 열진 못했다. 정작 그 일을 해낸 건 한국이었다.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미·북 정상회담과 이후 미·북 대화를 이끌어갈 차기 국무장관에 지명된 배경이 대통령과 마음이 잘 맞는 데다 대북 강경 성향이라서가 아니다. 트럼프의 뜻을 실천 가능한 방안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 덕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북 정상회담 준비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들뜬 한국과 달리, 워싱턴은 어쩐지 발을 질질 끌며 마지못해 가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도 못 믿겠고, 한국이 이렇게까지 미·북 정상회담을 독려하는 이유도 모르겠다는 식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준비가 덜 돼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남·북·미 3자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된 데 대해, 이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방안이라 상당히 당황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열린 '대화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한국이 조급해하는 것처럼, 워싱턴에서도 이 기회가 언제 닫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한국이 '너무 세게 미국을 끌고 가는 것 아니냐'는 저항감도 있다.

뭔가 흔쾌하지 않은 이런 분위기는 북한이 미국에 직접 비핵화와 정상회담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이와 관련한 공식 발표도 없었다는 데서 시작한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통해 전해 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이 전해준 얘기만 갖고는 김정은이 미국의 생각과 같은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들 한다. 아마도 미국은 미·북 정상회담으로 가기 전 어떤 방식으로든 비핵화와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직접 확인하려 할 것이다.

워싱턴 전문가들은 미·북 정상회담의 기대치를 낮추자고 한다. 공들여 협상했으나 실패한 합의의 시체가 즐비한 미·북 핵 협상의 역사를 생각할 때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징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몇몇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나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전망해봤다. 10개 가까운 시나리오를 만들어봤으나 트럼프 변수가 더해지면 다 예측 불허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그의 선거 승리를 '축하하지 말라'는 안보팀의 조언을 무시한 채 축하 인사를 해버렸다. 상황을 단순화해 과감하게 결단하는 트럼프의 승부사 기질은 오히려 참모들이 정교하게 짜놓은 시나리오 바깥에서 답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시작해 미·북 정상회담을 거쳐,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한국의 열망은 미리 꺼내 보이지 않는 게 좋을지 모른다. 오히려 트럼프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다. 트럼프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2/20180322035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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