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비핵화, 진짜와 가짜 그 어디쯤


독일 일간 도이체벨레(DW)는 지난 19일(현지 시각) 독일 정보부 수장이 전날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의원들에게 “북한이 핵·미사일로 유럽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외교 이사회 회의에 참석했다.

강 장관은 20일 귀국하면서 이 회의와 관련,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설명하고 앞으로 방향에 대해 EU 28개국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의 ‘전폭적 지지’ 발언은 독일 정보기관 책임자가 미국 본토뿐 아니라 유럽도 북한의 핵 타격 사정권에 들어 있다는 우려를 밝힌 것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 이후 우리 정부가 들떠 있다는 인상을 문득문득 받는다.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한 말이 그렇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은 회담 자체가 세계사적인 일이고 (회담) 장소에 따라서는 더욱 극적인 모습이 될 수도 있다”며 “진전 상황에 따라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3국 정상회담 발언은 미국, 북한과 조율되지 않은 것이다.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북 정상회담 날짜나 장소, 회담 의제는 오리무중이다.

무엇보다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정말 만나긴 하는 거냐는 의심이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일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 접견 이후 모습을 감췄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포함한 ‘3·5 합의’뿐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의 미·북 정상회담 제안과 트럼프 대통령의 수락 소식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0일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제안에 수긍한 당국자들’이라고 언급한 것이 그나마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다.

미국 주류 언론도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매체의 침묵을 수상쩍게 여긴다. 뉴욕타임스는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은 한국 정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이고 북한은 아직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대북 특사단에게 밝혔다는 비핵화 의지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 개념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지난 6일 브리핑에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고 밝혔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폐기’는 엄연히 다른 얘기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줄곧 요구하는 주한 미군 철수와 미국의 핵우산 철회를 끌어들이는 개념이다. 백악관은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란 표현을 쓴다. 북한의 핵 포기 의사가 진심인지 아직 헤아리기 어렵다.

워싱턴에선 정상회담에서 협상이 실패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취할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 대사는 지난 20일 미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시간을 벌려 하는 것이라 판단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회담장을 떠날 것”이라며 “협상이 실패할 경우 다음 옵션으로 군사 행동은 매우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북한이 핵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군사 행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북 강경파’인 볼턴 전 대사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후임자로 거론되고 있다.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낙관할 것도 아니다.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다. 직진만 할 게 아니라 ‘플랜 B’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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