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중매외교’의 첨병 역할을 한 특사단의 일정이 마무리 되고, 본경기를 위한 사전준비단이 꾸려졌다. 청와대는 지난 15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총괄 간사로 하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이번주부터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 준비에 돌입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담판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이 17일 경기 성남 판교 세종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17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경쟁심과 승부욕이 강하며, 다른 국가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많다. 이런 성정을 이용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이날 세종연구소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특사로 보낸 김여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환대가 김정은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김정은을 정상 국가의 정상으로 인정해준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 실장은 이어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다르다. 김정은은 경제를 굉장히 중시하는 입장”이라며 “재선을 고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하루 빨리 제재 해제를 바라는 김정은의 공동 이해가 겹쳐 핵폐기가 진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북핵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려면 탑다운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면 핵폐기 완료와 미북 수교 시점을 못박아야 한다. 2019년~2020년에 핵 폐기가 이뤄지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했다.

정 실장은 또 “북한은 비핵화 문제는 남측과 논의하지 않겠다고 해왔는데, 이번에 아주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이례적인 결과”라며 “과거엔 생각하기 어려웠던 비핵화 문제를 놓고 북한과 미국, 한국 간에 진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정 실장은 이와 함께 “미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얘기하는 건 대화의 판을 깨자는 것”이라며 “북한도 이 사실을 아는 상황에서 (국내 일각에서) 이 같은 얘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지난 2000년 금강산에서 진행된 남북 NGO 대회에서 친북 성향 한 단체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자 오히려 이들을 자제시킨 바 있다”면서 “북한은 지금까지 미북 관계 개선 조짐이 보이면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이 17일 경기 성남 판교 세종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다음은 정 실장과의 일문일답.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진행된 대화 국면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각에선 ‘너무 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아니다. 평창 기간에 조성된 남북 간 신뢰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 약화될 수 있다.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새로운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설득이 효과가 있었고, 독재자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눈치를 보지 않고 빠르게 결단을 했다. 김정은도 생각하지 못했던 돌파구를 한국 정부가 제안했고, 김정은으로선 한번 시도해볼만한 카드라고 생각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걸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아줬다.”

-우리 정부가 외교적으로 잘했다고 평가하나.

“그렇다. 과거엔 생각하기 어려웠던 비핵화 문제를 놓고 북한과 미국, 한국 간에 진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말로는 했지만 실제로 하지 못했던 그랜드 바겐(일괄 타결)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나. 높이 평가해야 한다.”

-가장 큰 성과를 꼽자면?

“그동안 북한은 비핵화 문제는 남측과 논의하지 않겠다고 해왔는데, 이번에 아주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이례적인 결과다.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화 의지와 북한이 또 현실적으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압박과 관여’ 정책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이 방북 후 발표한 6개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평가도 많다.

“그런 평가를 보면 상황의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말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영변 핵시설이나 기존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면서 이미 만들어놓은 핵무기는 인정받는 그런 걸 요구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김정은이 왜 비핵화를 이야기했는지, 상황이 달라졌다는 걸 인정 못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태엽이 물고 물리듯이, 하나의 논리가 바뀌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북한이 올해 남한과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제안한 자체가 핵정책에 있어서 큰 변화를 수반한 제안이었다. 북한의 제안이 다른 것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봐야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무엇이 달라졌다는 말인가?

“크게 2가지가 달라졌다. 북한은 작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통해 협상카드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 미국은 북핵 문제를 위협으로 간주하면서도 대외 문제에서 우선순위에 놓지 않았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그때만 반응했다가 잊어버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미국은 북핵을 자국 안보의 실제적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확산만 안 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북한만 시간끌기를 한게 아니라 미국도 시간끌기를 한 셈이다. 미국은 가만히 놔둬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의지가 없었다. 그런데 작년 1월 1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ICBM 시험발사를 예고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정은은 2017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ICBM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북한은 수소 폭탄 실험에 성공했고, ICBM도 완성이라고 간주하긴 어렵더라도 백악관까지 타격 가능한 사거리를 보여줬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한 핵미사일이 우선순위가 됐다. 또 하나는 이 수준까지 오기까지 북한이 치른 비용이 김정은의 예상보다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핵·미사일 실험을 계속하면서 북한의 중요한 외화수입원이 거의 다 차단됐다. 광물과 수산물 수출이 차단되고, 중국에서 일하던 식당근로자도 다 철수했다. 중국의 대북사업도 거의 다 중단됐고, 북한은 거의 준 봉쇄상태에 도달했다. 이러한 전무후무한 국제적 고립으로 인해서 북한도 기존의 병진노선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이 북태평양의 공해(空海)에 ICBM 시험 발사를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였다.

“작년 11월에 북한이 ICBM을 시험발사하고 12월에 유엔 안보리 제재 나왔는데, 북한 정유제품 수입의 90%를 막는 초강력 제재다. 북한이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군대는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난방은 목탄으로 하더라도, 탱크나 전차를 목탄으로 움직일 순 없지 않나. 군이 큰 타격을 입었고, 물류에도 차질이 생겼다. 물류에 문제가 생기면 상품의 시장 가격이 올라간다. 이미 북한 내부에선 점진적으로 시장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아직은 제재 수준이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지 않나?

“북한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내다본다. 정권의 임기가 없기 때문이다. 제재 초기인 지금은 그동안 축적해놓은 것들을 바탕으로 뜻밖에 잘 버티고 있다. 그렇지만 이 상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보 소식통에 의하면 최근에는 북중 밀무역도 거의 차단됐다고 한다. 중국은 그동안 공식적인 무역은 통제하더라도 밀무역에 대해선 방관해왔다. 그런데 밀무역까지 차단돼 심각한 고통에 직면했다. 내부적으로도 문을 열었지만 근로자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공장이 많다. 수출 활로가 막혔다는 건 김정은의 북한 기업에 큰 타격이다. 평양 주변에 경공업 공장이 많은데, 이런 공장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평양 주민의 삶도 어려워지고 있다. 외화수입은 김정은의 통치자금인데, 통치자금 자체가 계속 줄어들면 충성심이 필요한 군인·간부들의 관리가 어려워진다.”

-무엇이 상황을 극적으로 바꿨다고 보나?

“평창 동계올림픽이 북한으로 하여금, 정책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평창 참가를 계기로 북한은 남측과 관계를 개선하고, 제재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고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이런 김정은의 시도가 벽에 부딪히게 됐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 한국 정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동생인 김여정을 직접 특사로 보내서 문 대통령 초청 의사까지 밝혔는데, 남측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선 미북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이에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미북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도 개선 안 되는데, 그렇다고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 한국 정부가 북측에 미북정상회담을 주선해주겠다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북 수교, 평화 협정, 국제사회 제재 해제 등을 얻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나.

“이번 특사단이 들고온 합의문의 행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거기 보면 김정은이 비핵화와 미북 수교 문제를 놓고 미국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구절이 들어 있다. 비핵화와 미북 관계 정상화에서 끝나지 않고, 북일관계 정상화까지 갈 수 있다. 북일관계를 정상화하면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거액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경제 위기에 봉착한 북한 입장에선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준 봉쇄상태에서는 2년 이상 버티기 어렵다. 버티기 어렵다는 게 정권 붕괴를 말하는 건 아니다.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김정은이 나름의 결단을 내렸다는 말인가.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 다르다. 김정일은 ‘주민이 굶어 죽어도 정권만 유지하면 괜찮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김정은은 ‘인민의 지지 없이는 정권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선 김일성과 생각이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인민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이 17일 경기 성남 판교 세종연구소에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가 쓴 ‘김정일 사생활’ 책을 인용해 설명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그런 김정은의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나?

“많은 부분에서 파악할 수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후에 애도 분위기를 조성한 후 경제 문제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고, 이후 선군정치만 내세웠다. 반면 김정은은 경제를 굉장히 중시하는 입장이다. 이런 점은 김정은과 후지모토 겐지(김정일의 요리사)와의 과거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김정일이 장쩌민과 정상회담을 하고 그 후에 중국을 방문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김정은이 후지모토에게 ‘중국은 개혁 개방 경제를 운용하면서도 체제가 유지되고 안정적이다. 북한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과거에 스위스에서 4년 반 유학을 했다. 김정은은 자본주의가 문제점은 있지만 많은 장점이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봤다. 북한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낙후하다는 것도 안다. 김정은의 승부사적인 기질, 경쟁심, 이런 게 김정은의 기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후지모토는 김정은이 형 김정철과 같이 농구경기를 하면서 자기 팀이 지면 팀원들 모아놓고 다음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실수를 확인하고, 실수한 선수를 훈련해서 반드시 이기려고 했던 게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승부욕·경쟁심이 굉장히 강한 김정은이 원하는 건 낙후한 북한이 아니다. 자신도 세계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한다.”

-김정은의 이러한 기질을 어떤 식으로 회담에 활용할 수 있을까?

“승부욕이 강한 사람의 특징은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1월에 평창 참가를 발표하고 2월에 김여정 보냈을 때, 한국 정부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준 고립 상태인 북한이 한국으로부터 받은 따뜻한 대접에 상당히 감복했을 것다. 이러한 환대가 김정은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김정은을 정상 국가의 정상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미북정상회담도 적극 돕겠다고 하니, 북한으로선 전향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북한으로선 다시 뒤로 돌아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정말로 북한이 핵 폐기를 할 수 있을까? 카다피를 비롯한 여러 독재자가 핵을 포기한 순간 최후를 맞았는데.

“저도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봤다. 그런데 5월에 열릴 미북정상회담은 기적과도 같다. 아무도 생각 못했던 그런 사건이다. 미북정상회담은 미국이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북한으로선 무조건 핵을 포기하라고 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겠지만, 대신 미북 수교, 평화 협정, 대북제재 해제, 연합군사훈련 중단이라는 보따리를 얻을 수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김정은의 선택지는 단 2개뿐이다. 계속 이 상태로 타협 없이 그대로 가느냐, 아니면 현재 보유한 핵 무력과 과거에 얻고자 했던 것을 교환하느냐이다.”

-그래도 중동 독재 국가의 선례가 있다.

“북한과 이라크·리비아 등은 기본적으로 다르다. 또 김정은 제거가 미국 입장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북한의 인질이 돼 있기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할 뿐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더라도 체제 안전 자체엔 문제가 없다. 핵은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도구다. 핵을 포기하면서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북한에 안전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북한의 시각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정권이 교체돼 기존 합의에 대해 다른 말을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지 않을까. 단적인 예로 오바마 정부가 합의한 이란 핵협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실패’라며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란 핵협상은 동결을 전제로 한 합의이지 않나. 향후 진행될 북핵합의는 ‘핵폐기’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다른 정권에서도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

-미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이 빅딜을 하려면 사전 실무협상에서 상당 수준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이게 가능할까?

“실무 수준에 너무 의존하면 현실적으로 대타협이 어렵다. 북핵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려면 탑다운 방식으로 가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만나면 핵폐기 완료와 미북 수교 시점을 못박아야 한다. 이렇게 시한을 정한 뒤에 양국의 실무자에게 협상을 하게하는 방식이 유력하고, 또 그런 방식으로 가야한다.”

-두 정상이 핵폐기 시한으로 합의할 시점은 언제쯤이 적당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의 지루한 협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선거가 2020년에 진행된다. 트럼프 입장에선 2019년 말이나 2020년 여름에 핵폐기가 이뤄지는게 여러모로 좋다. 김정은 입장에서도 하루빨리 제재가 해제되거나 완화돼야 하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하려고 할 것이다. 속도전 방식으로 처리하자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남북정상회담에선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비핵화에 합의하고, 이 비핵화를 언제까지 달성하느냐 이다. 정의용 실장이 방북 후 발표한 6개항 합의 중 3개항이 핵·미사일과 관련됐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까지 정 실장이 발표한 합의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우리측을 통해서만 발표됐다. 이 합의문을 정상회담에서 발표할 정상선언으로 공식화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한다? 미북정상회담이 아니고?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할 수 있다. 남북정상이 합의하고, 이후에 진행되는 미북정상회담에서 발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개인적으로는 남북이 합의하고 발표는 미북정상회담에서 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을 실어주는 게 바람직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핵폐기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라고 모호하게 표현한다.

“북한은 항상 ‘한반도 비핵화’라고 표현한다. 남북관계가 잘 풀릴 때는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 비핵화’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그런데 경색국면에선 ‘주한미군 핵 철수’ 등, 남한까지 연결지어 포괄적으로 사용한다. 정상회담에서 실질적으로 어떤 대화가 이뤄졌는지를 보면 된다. ‘언제까지 북한이 개발한 핵프로그램을 폐기한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나올 것이다.”

-북한은 현재 헌법에도 핵보유를 담고 있다. 이런 부분이 비핵화 과정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의 말은 노동당 규약보다 위에 있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하겠다고 하는 순간 헌법상 핵보유국 표현은 사문화된다.”

-핵폐기를 한 북한에게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인센티브는 뭐가 있나.

“미북 대화와 북일 대화를 주선해주는 것이 가장 큰 인센티브다. 현 정부가 미북 수교까지 할 수 있도록 북한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지 않나. 어느날 갑자기 북한에서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트럼프 만나자’고 하면, 미북정상회담이 성사됐겠나.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불신의 벽은 너무 높다. 둘을 만나게 하려면 중간에서 이어줄 매개체가 필요했다. 이걸 한국이 하고 있다. 북한은 이번을 계기로 국제사회로 편입할 수 있게 됐다. 김정은 입장에선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미북, 북일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 등 최대의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에서 ‘검증’을 중요 포인트로 꼽는데, ‘되돌릴 수 없는 폐기’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북한이 추후에 다시 핵무장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핵물질이 적어서 다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폐기하기로 한 핵물질은 중국으로 이전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폐기했다’고 해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이외의 문제, ‘개성공단 재가동·금강산 관광 재개’나 ‘천안함 사과’ 등을 다룰 수 있을까?

“북핵이라는 큰 돌을 치워야 하는 상황에 다른 돌까지 신경쓰긴 어려울 것이다.”

-비핵화 이외의 남북관계 개선 의제는 어떻게 다뤄야 하나.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폐기 프로세스에 합의하면, 그 다음에 관계 개선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논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미북정상회담 이후에 남북 간 총리회담이나 당국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다. 6·15와 10·4 등 기존 합의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은 총리회담이나 당국회담에서 다루면 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이 17일 경기 성남 판교 세종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정전위원회를 철수해야 하지 않나. 이게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과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북한이 이걸 요구하는 건 ‘판을 깨자’는 의미다. 북한은 지금까지 미북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면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2000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군을 용인한다는 발언을 한 것도 같은 차원이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봤자 안먹힌다는 것을 북한도 안다. 실제로 최근들어 노동신문에서도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난다. 미북정상회담 제안 이후, 대미비난이 현저하게 줄었다. 대미비난이 없는 날도 있고, 대미비난을 북한이 직접 하는게 아니라 제3국이 하는걸 인용해서 소개하는 정도다.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에 금강산에서 남북 NGO 대회가 열렸는데, 거기서 친북성향의 남측 단체가 ‘주한미군 철수’를 이야기하니까 오히려 북측에서 자제시켰다. ‘미국과 대화하려는데 판을 깨려고 하느냐’면서 북한이 말렸던 적이 있다.”

-한미연합훈련은 어떻게 보나.

“주한미군이 훈련에 들어가면 북한은 비상사태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선 주한미군 훈련만 중단해도 안보에 대한 부담을 해소할 수 있다.”

-훈련을 중단한다면 군이 주둔하는 의미가 있나?

“중단을 말한 건 연합훈련에 한한 것이다. 전쟁을 가정해서 공동 상륙작전 등을 훈련하는 걸 북한은 큰 위협을 느낀다. 따로하는건 상관없다. 연합훈련도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하는 건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 폐기 단계로 들어가면, 그때 훈련 중단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노동신문 등에서 대미 비난 강도를 줄였다고 했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미북 대화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북한 내부 여론을 고려한 조치로 봐야 한다. 미북정상회담이 개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외부세계에서도 놀라지 않았나. 북한 내부에서 받는 충격은 더 클 것이다. 매일같이 미국을 비난해왔는데, 갑자기 정상회담 한다고 하면 주민들은 어떻게 된건지 심각한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날짜가 잡히면 그때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내부적으로 조정 작업을 하고 있다. 먼저 언론에서 대미비난 강도 떨어뜨리면서, 내부적으로는 우리의 핵 위력에 미국이 겁을 먹고 대화 제의를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선전을 할 것이다.”

- 지난 16일 한·일정상 통화에서 아베 총리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선언을 언급하며 북일대화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일본도 이번을 계기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하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일본과 북한은 정상회담을 두번 하면서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지만 핵문제가 걸림돌이었다. 만약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북일관계도 정상화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일 수교와 납치자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이 선상에서 미북정상회담 후에 한국 정부가 북일정상회담을 주선할 가능성이 있다. 아베 총리도 기꺼이 응할 것이다. 향후 북한을 둘러싼 대화가 미북정상회담에서 끝나지 않고, 북·일, 북·중, 북·러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이 외교안보정책을 전담하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아닌 임종석 비서실장이다. 이를 어떤 의미로 보나?

“정상회담 준비 과정은 청와대가 총괄할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통일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하는데, 준비위원장은 정상회담과 관련한 대통령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이건 정의용 실장이 관장할 분야는 아니다. 정 실장은 의제 설정이나 대미, 대북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협상에 집중해야 한다. 정 실장이 위원장을 맡으면 여기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위원장은 종합적으로 관리하 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비서실장이 하는 게 적절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북한의 권력 체계와 대외 전략 전문가로 꼽힌다. 2015년 9월부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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