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4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쿠바를 침공했다가 엄청난 망신만 당했다. 엘리트가 수두룩한 케네디 정권이 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됐을까.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는 권력 핵심들이 집단사고(集團思考)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결속력이 강하고 도덕성이 우월하다고 믿는 집단일수록 능력을 과신하고 반대 의견을 무시하는 '만장일치의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 집정관 아리스테이데스는 공평한 지도자로 소문났다. 하지만 아테네 시민들의 투표로 추방됐다. 민주정을 위협하는 독재자를 막기 위한 '도편(陶片) 추방제'에 따른 것이었다. 그가 대단한 독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입만 열면 '아리스테이데스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들 얘기하는 게 그에겐 독(毒)이 됐다. 시민들이 이런 현실에 염증과 두려움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만장일치에 대한 거부다. 민주주의 발상지다운 얘기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엊그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다시 뽑혔다. 투표 결과는 '2970표 대(對) 0'. 반대는 물론 기권 한 표도 없었다.' 7년 전 지방당 조직의 만장일치 선거를 비판했던 인민일보는 그제 사설에선 '만장일치 당선은 전당, 전군, 전국 각 민족 인민의 공동 소망'이라고 썼다. '만장일치'가 계속되면 반항 의식이 침묵이란 껍질 속에서 압력을 높여가다 결국 폭발하는 날이 온다.

▶마오쩌둥은 1949년 정치협상회의에서 국가주석으로 뽑혔다. 투표자 576표 중 575표를 얻었다. 민주당파 장둥쑨(張東蓀)이 '반대표'로 지목됐다. 장둥쑨은 장제스 국민당 독재에 반대하는 문필 활동으로 이름난 지식인이었다. 국공내전을 거치며 공산당에 기운 그는 중앙인민정부위원, 정협위원 등 요직을 맡았다. 그러다 6·25전쟁 전후 미국에 기밀을 넘긴 혐의를 뒤집어쓰고 쫓겨났다. 마오쩌둥에게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란 소문이 퍼졌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도 널리 유행한 '민주집중 제'는 레닌이 발전시켰다. 토론 과정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결정이 나오면 모두가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 결과는 반대 의견 압살과 개인숭배뿐이었다. 한국 북쪽에는 '2300만표 대 0'의 북한이 있고, 서쪽에는 '2970 대 0'의 중국이 있다. 러시아의 푸틴도 종신 집권을 꿈꾼다고 한다. 이 지정학이 우리 숙명인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19/20180319026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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