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틀리면 백성 더 힘들고핵 무기로 모든 일 해결 못해
나라 문 닫아선 경제 망가져 '先代 유훈'도 버리는 용기를
 

리 소테츠(李相哲) 일본 교토 류코쿠대학 교수
리 소테츠(李相哲) 일본 교토 류코쿠대학 교수

김정은 위원장 귀하.

저는 옛날 북만주로 불렸던 중국 흑룡강성 삼강 평원 일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1930년대에 한반도에서 이주해온 개척민들이 모여 산 이 마을은 당시 해마다 풍년이 들어 민심이 후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항상 고국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북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70년대 중반 중국인들은 북한에 반해 있었고, 간혹 상영되는 북한 영화는 중국 인민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후 중국에선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나고 국가 체제를 바꾸었으나 북한은 사회주의를 버리지 않고 체제를 지켰습니다. 그 대신 북한은 먹는 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 하는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소년 시절 동경해 마지않던 북한이 왜 오늘날 가난한 나라가 돼 버렸을까요.

제가 쓴 저서 '김정일 전기' 집필을 끝내고 당신 아버지의 일생을 돌아보며 허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님 일생에서 얻은 세 가지 교훈을 전해주고자 합니다.

우선 아버님은 너무 힘든 인생을 살았습니다. 생전에 지구를 열 바퀴나 돌 수 있는 거리를 현지 지도 길에서 보냈고 하루에 4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구상에 아버님처럼 부지런한 지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70년대 중반 북한 매체는 매일 800만t 알곡 생산 고지 점령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40년 넘게 흐른 지금도 식량 생산량은 500만t 선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지향하는 방향이 틀리면 지도자가 열심히 일할수록 백성은 더 힘들어지고 나라 사정이 더 나빠진다는 교훈이 떠오릅니다.

둘째로 아버님은 '총대'(무기·힘)가 세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한국을 압도하는 힘을 갖기 위해 100만이 넘는 군대를 만들고 미사일과 핵개발에 매진해 왔습니다. 하지만 핵을 가진들 그걸 어디에 쓰겠습니까. 지금 당신은 핵만 완성하면 나라가 무사태평하리라 여기는 듯합니다만 소련은 수천발의 핵을 갖고도 무너졌습니다.

핵이 없으면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미국으로부터 공격받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만, 미국은 핵도 없고 강한 군대도 없는 쿠바를 침략하지 않았고,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나라도 핵을 가지려고 하지 않으면 압박하지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님은 주민들이 자본주의에 물들지 못하게 나라의 문을 닫아걸고 정보를 차단한 채 북한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라고 선전했습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주민이 목숨 걸고 탈출했을까요. 바깥세상을 북한 주민들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세상은 정보를 차단해버리면 돈줄도 차단되는 법. 정보를 통제하니 장사도, 경제도 망가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금 역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거나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4월에는 한국 대통령을 만나고, 5월에는 미국 대통령을 만날지 모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역사의 죄인이, 잡으면 민족을 구한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다 버릴 필요도 없고 먼저 핵을 내려놓아 보세요.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선대의 유훈 가운데 현실에 맞지 않는 교시는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제일 큰 이유 중 하 나는 건국 영웅인 모택동의 교시를 일부 부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담 몇 번으로 나라는 변하지 않습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가 필요합니다.

지금 북한의 현실은 핵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누가 압력을 넣어서가 아니라 쓸모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있다면 먼 훗날에 민족의 역사를 바꾼 지도자로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18/20180318018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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