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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非核化 진심' 알려면 김정은 워싱턴으로 불러야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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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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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날 때 약속 장소를 보면 부탁을 주고받는 쪽을 짐작할 수 있다. 사정이 급한 사람이 상대방 사무실을 찾아가거나 그 근처 식당을 잡는다. 회동 장소의 원근 법칙은 국가 정상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전두환부터 문재인까지 8명의 대통령 중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한국에서 가진 사람은 김영삼 한 명뿐이다.

정상회담 장소에 녹아든 역학관계는 회담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1938년 9월 14일 영국 체임벌린 총리는 독일 히틀러 총통에게 만나자는 전문(電文)을 보냈다. 체임벌린 총리는 9월 15일 베르히테스가덴, 22일 고데스베르크, 29일 뮌헨에서 히틀러를 만났다. 모두 독일이었다. 히틀러가 오라는 곳으로 세 번이나 달려간 것이다. 체임벌린이 뮌헨회담 합의문을 흔들며 "여기 이 시대의 평화를 담아 왔다"고 자랑했던 결과는 1년 후 2차 세계대전 발발로 나타났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오전 회의를 마칠 무렵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오후에 시간 좀 더 내달라"고 한다. 김 위원장이 다른 일정이 있다며 딴청을 피우자 노 대통령은 "한 번 만나고 돌아가면 노무현이 쫓겨났다는 말 듣는다"고 사정한다. 그때야 김정일은 "그럼 오후 1시간 아니면 1시간 반 정도"라고 선심(善心)을 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처럼 '구걸'과 '적선'이 오가게 된 것은 홈 어웨이 방식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지 않고 김정일의 홈그라운드에서만 계속 열린 탓이다.

김정은이 대북 특사단을 통해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5월에 만나자"고 시기를 정해 받아들이자 다음 궁금증은 회담 장소다. 김정은이 제일 원하는 곳은 평양이겠지만, 미국은 부정적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아들)은 임기가 끝나가던 2008년 10월 라이스 국무장관이 6자 회담 끝마무리를 위해 평양행을 저울질하자 "안 된다. 국무장관이 북한에 가면 김씨 체제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했다.

국무장관도 못 가게 말리는 마당에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트럼프가 평양까지 가서 김정은과 악수하면 북한 당국은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가 공화국의 핵 무력이 겁나 허겁지겁 최고 지도자를 만나러 달려온 것"이라고 선전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을 굶겨 가며 핵 보검을 벼려온 김씨 세습 왕조의 선택이 옳았다고 인정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핵 폐기를 위해서는 워싱턴 회담이 최선이다. 백악관 부대변인도 "미·북 정상회담이 백악관에 열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일성은 1994년 6월 카터 전 대통령에게 핵개발을 중단하겠다고 했고, 김정일은 2005년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다. 우리는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계속 핵을 개발했다. 평양에서 전언(傳言) 형태로 흘러나온 약속이라 "왜 어겼느냐"고 따질 수도 없다. 김정은이 워싱턴에 가서 공개적으로 핵 포기를 다짐하면 뒤집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김정은이 신변 위협 때문에 미국에 가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김정일은 2002년 4월 서울 답방을 요청하는 김대중 대통령 친서를 받고 "북한을 적대시하는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서울에 가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이 어려우면 판문점에서 만나자"는 수정 제안에 대해서도 "판문점은 공화국을 악의 축이라며 위협하는 미군이 관할하고 있는 곳"이라며 거부했다. 한마디로 피해망상일 뿐이다.

미국 안보 관계자들은 '도조 히데키 옵션'을 선택하지 않는다. 1941년12월 7일 일본의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가 선전포고 없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것 같은 비겁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자고 부른 상대에게 위해(危害)를 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김정은 입장에서 미·북 정상회담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으로부터 안전 보장을 받는 거래다. 김정은이 자신을 해칠까 봐 워싱턴에 못 갈 정도로 미국을 불신한다면 그런 교환이 성립할 수 없다. 김정은이 신변 위협을 핑계 삼아 워싱턴 회담을 끝내 거부한다면 체제 보장용 핵을 포기하겠다는 약속 역시 또 한 번의 사기극일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정말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워싱턴에서 자기 입으로 직접 밝히는 것이 25년째 불신의 미로를 헤매 온 북핵 협상을 제 궤도로 되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김정은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에 오라고 김정은을 압박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13/20180313032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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