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분만에 美北회담 결정… 백악관 안팎선 "리얼리티 쇼로 보나"]

유세장서 "위대한 타결 볼 수도", 기자들엔 "엄청난 성공 거둘 것"
美·北정상회담에 강한 자신감
백악관은 "구체적 조치가 먼저", NYT "회담 자체가 北의 승리"

트럼프, 김정은 제안 설명하던 정의용 발언 끊고 회담 즉석 수용
매티스 "리스크 있다"… 클린턴 "북한과 핵협상 위험성 모르나"
대화 지지하던 美언론도 "준비 없이 테이블에… 이판사판 도박"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각) 북한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위대한 타결을 볼 수도 있다"며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백악관은 "구체적인 조치가 없으면 김정은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대화를 강조했던 미국 진보 언론들도 "만나는 것 자체가 김정은의 승리"라며 졸속 회담 가능성을 경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펜실베이니아주(州) 하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후보 지원 유세에서 "(북한은) 화해를 원한다고 본다"며 "이제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 국가를 위해 (북한과) 가장 위대한 타결을 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믿어라.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그걸 할 수도, 하려 하지도 않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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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중간선거 유세서 북한 얘기로 자화자찬 - 1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州) 하원 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후보 지원 유세장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핵 문제에서) 전 세계 국가를 위해 가장 위대한 타결을 볼지도 모른다”고 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지원 유세에서 맨 처음 꺼낸 화제가 북한이었다. 북한 문제를 '현 정부의 성공과 전 정부의 실패' 구도로 끌어가 이번 보궐선거뿐 아니라 앞으로의 중간선거에까지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서는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회담을 준비하는 백악관의 분위기는 달랐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대통령은 북한에 의한 구체적인 조치와 구체적인 행동을 보지 않고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위한 행동을 보일 것을 요구하면서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이날 "백악관 내에서 서로 다른 기류가 있고, 말리는 참모들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북한은 '불량국가'에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변신을 추구해 왔다"며 "미·북 정상회담 그 자체가 북한의 승리"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비핵화 검증 수단 등이 전혀 맞교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은) 독재자에게 상을 주는 셈"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전임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 하원 보궐선거의 공화당 후보 선거 지원 유세에서 "(한국) 특사단이 많은 언론 앞에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발표했는데, 사람들이 '그건 오바마가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오바마는 그걸 할 수도, 하려 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어 "조지 W 부시도, 빌 클린턴도 하려 하지 않았다"며 "한다고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고 했다.

'최대한의 압박'이라는 자신의 대북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강조하며, '전 정부의 실패와 현 정부의 성공'이라는 구도를 내세웠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한 것이 국내 정치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적으로 중간선거 승리가 지상 과제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철강·알루미늄 관세 폭탄 등 보호무역 기조를 지지층 결집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대외적으로는 북핵 문제의 획기적 진전을 성과로 삼아 중간선거를 돌파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북 정상회담을 너무 즉흥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지난 8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을 설명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듣던 도중 말을 끊고 "그(김정은)에게 '예스'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종 결정에 도달하기까지 몇 주가 걸릴 일인데, 불과 (면담 시간인) 45분 만에 결정이 이뤄졌다"고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마치 TV 리얼리티 쇼처럼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사업가로서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미·북 정상회담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 거래와 외교적 협상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북한 김정은에게 핵·미사일은 정권의 생존이 걸린 문제로,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장 백악관 내부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의 말과 수사에 일치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볼 때까지 이 만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미국의 입장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이 대화에 관해서라면 우리 쪽에선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백악관 브리핑은 범정부 외교·안보팀의 조율을 거쳐 나오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자칫 행정부 내 불협화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감수하고서 일단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북 정상회담에 "리스크가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이날 네덜란드 언론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 핵무기 협상을 논의하는 위험성을 모르고 있다"고 했고, 빌 리처드슨 전 유엔 대사는 "이것(북한과의 협상)은 리얼리티 TV 쇼가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사설로 일제히 경계 목소리를 냈다. 진보 성향의 NYT는 '도널드 트럼프와 북한-엉망진창(What a Fine Mess)'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초청을 응낙한 갑작스러운 태도, 나아가 변덕스러운 대통령이 복잡한 국가 안보 이슈에서 제대로 된 정보도, 준비도 없이 김정은의 테이블 맞은편에 앉는다는 사실은 걱정스럽다"고 했다. NYT는 "이번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판사판 도박(high-stakes gamble)"이라고도 했다. WP도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례 없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받아들이기로 갑자기 결정한 것은 이미 높아진 실패 확률을 더욱 높인다"며 "그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눈 감고 걸어가 독재자와 대좌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다는 북한의 장기적 목표가 바뀌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며 "김정은은 아버지의 대본을 빌린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12/20180312002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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