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칼럼
[최보식] 우리 국가안보실장이 北의 뻔한 '프로파간다'를 전했다
조선  |  @chosu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3.0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현 정권은 미국이 북한을 때릴 것에 대해 겁을 내지만,
정작 북한이 핵으로 우릴 위협하는 것은 별로 우려하지 않는다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국내 언론에 브리핑했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서도 이런 방북 성과를 그대로 전할지 궁금하다. "북측이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

이런 뻔한 북한의 프로파간다를 우리 국가안보실장의 입을 통해 전해질 줄 몰랐다. 조선중앙TV의 아나운서 역할을 맡는 게 옳지 않았을까.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스트레스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거나 우리 국민 수준을 유치원생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이따위를 '김정은 면담 성과'로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 뒷맛이 개운치 않은 대목이 있다. 김정은 면담 자리에서 '북핵 동결'이나 '폐기'라는 단어는 한마디도 안 나왔지만, 그는 "북측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고 강조했다. "비핵화 목표는 선대(先代)의 유훈이다. 그 유훈에 변함이 없다"는 김정은의 말을 전했다. 그런 말이 몹시 강렬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선대의 유훈…' 구절은 그전에도 김정은이 한 번 했고 그 아비 김정일도 몇 번 했다. 북한의 개정 헌법(2012년) 서문에는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 핵 보유국, 무적의 군사 강국으로 바꿨다'고 명시돼 있다. 김정일 사망 직전에 '핵 보유국'을 헌법에 못 박아놓은 것이다.

이를 몰랐다면 남북 관계에 대해 무식한 특사인 셈이다. 알고 그랬으면 다른 의도가 있다. 남북 대화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무마하고 현 정권의 대북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그런 게 아니었을까. 그러려면 북한 정권의 실체에 대해 화장(化粧)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매체에서 "조선의 핵 보유는 정당하며 시빗거리가 될 수 없다"고 보도하면서 허사가 됐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은 그의 브리핑 내용이 전부다. 그 브리핑은 사실(事實)과 주관적 해석의 구분이 안 된다. 김정은 면담에서는 실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평창올림픽에 내려온 북한 측과의 비밀 접촉에서 이미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안 그러면 면담 2시간 만에 남북 합의문이 나올 수 없다. 바깥으로 알려진 내용보다 훨씬 더 뭔가 있는 게 틀림없다. 또 평창올림픽 전후로 보여온 우리 정부의 태도로 유추해보면 면담 자리에서 그렇게 당당했을 것 같지는 않다. 젊은 세습 독재자 앞에서 특사단 5명이 수첩에 열심히 적고 있는 장면이 북한 매체에 보도됐다. 그게 필요했으면 한두 명이 그 일을 맡아도 됐을 것이다.

남북 간 대화를 나는 반대한 적이 없다. 전쟁 중에도 대화를 한다. 물론 항상 입을 벌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타이밍'이 있는 것이다. 국제 제재와 압박이 효과를 막 보이고 있는 지금 시점이 대화의 타이밍인가, 대화로써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수 있는 타이밍인가, 북한에 숨 쉴 구멍을 뚫어주고 북핵 완성의 시간을 벌어줄 위험은 없는가는 숙고 대상이 될 수 있다.

국가 앞날을 생각하는 정권이라면 이런 대화를 택한 기회비용도 따져봐야 한다. "과거 행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와 손잡고 북핵 폐기 압박을 밀어붙이는 절호의 기회를 잃을 수 있다. 장기적 국익 차원에서 어느 전략이 유효할지 계산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현 정권은 대화의 다리를 넘어섰다. 김정은 면담 성과에 대해 '평화를 위한 큰 발걸음'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 대화가 새로운 게 아니다. 김정은 면담에서는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 '4월 말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뉴스만 새로웠을 뿐이다. 북한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국제 여건에서 마침 유리한 상대인 진보 정권이 들어와 살길을 찾게 된 셈이다. 그쪽에서 급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을 '파격적 행보'이니 '통 큰 결단'이라고 수식하면 유치해진다.

앞으로 진행될 대화나 회담 과정은 과거에 다 겪어본 것이다. 북핵과 미사일의 진전이라는 더 고약한 결과로 돌아왔다. 이런 실패의 경험에서 배웠다면 낭만적으로 북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북핵은 남측을 향하고 있지 않다'며 북한 대변인 식으로 나오는 것도 역효과만 낳는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현 정권의 희망을 가미한 해석은 한반도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갈 것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점은 미국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북핵 폐기 의지만큼 현 정권이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현 정권은 미국이 북한을 때릴 것에 대해선 겁을 내지만, 정작 북한이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실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우려는 거의 없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목표는 비핵화"라고 했지만, 그의 멘토라는 문정인 특보는 시도 때도 없이 "북핵 인정" "한·미 훈련 연기" "미군 철수" 같은 말을 꺼내왔다. 현 정권의 실체는 정말 미스터리 아닌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8/2018030803067.html

조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Tel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SITE_MANAGER
Copyright © 2013 NK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