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이 만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Q:주한미군 철수 발언 논란됐는데
전작권 설명하며 나온 이야기… 국민께 심려 끼쳤다면 반성

Q:제재 고통 커진 뒤 대화 낫지않나
북한은 억누르면 오히려 반발, 인센티브 주며 변화 유도해야

Q:우리만 핵인질 되는 것 아닌가
미국, ICBM 포기 받고 북핵 인정? 그건 한국 버리는 일… 가능성 낮아
 

김창균 논설위원
김창균 논설위원

11년 만의 대북 특사가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온 시점에서 '논설실의 뉴스 읽기'의 첫 주제는 북핵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게 논설위원실 회의 결과였다. 특사들이 8일 곧장 미국으로 나서는 만큼, 문정인(67) 특보에게 앞으로 북핵 협상의 전망을 묻기로 했다. 김창균 논설위원이 지난 7일 오후 정부 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문 특보를 1시간여 동안 인터뷰했다. 2주간 미국에 갔다가 하루 전 귀국했다는 문 특보는 "한국 대통령이 나가라면 주한 미군이 나가야 한다"는 발언 파동에 대한 억울한 심정부터 꺼냈다. 워싱턴 DC에서 가진 민주평통 간담회에서 "한국은 전시작전권이 없으니 군사 주권이 없는 상태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답하다가 나온 얘기인데, 전후 사정 없이 보도가 나가 시달렸다는 것이다. 문 특보는 "전시작전권은 군사 주권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점을 설명하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가라면 주한 미군이 나가야 한다고 예를 들었을 뿐이다. 상식 아니냐"고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에게 나가라고 하는 비현실적 가정까지 들어가면서 동맹에 부담을 주는 발언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문 특보는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다면 반성하겠다. 다만 무보수 명예직 특보인 내 말을 정부 입장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보였다'고 했다. '선대의 유훈'이니 '체제 보장하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건 늘 해오던 수사(修辭)인데 그걸 태도 변화로 받아들이나.

"이제 시작 아닌가. 북이 처음으로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기본 입장을 밝힌 것이다. 예단하지 말고 지켜보자."

―한국 정부가 미·북 대화를 중재하는 모습이 조건 안 맞는 아파트 매매 거래를 붙이는 부동산 중개업자 같다.

"북한이 핵 미사일 도발을 중지하고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 미국이 제시했던 대화 조건에 맞는 것 아니냐."

―당사자끼리 조건을 확인한 게 아니라 한국이 북한을 만난 뒤 '조건이 맞는다'면서 미국보고 대화하라는 것 아닌가.

"그게 외교 아닌가. 그걸 문제 삼는 게 이해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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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에 방점을 두고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다면 미·북 대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남강호 기자

―북핵 협상에 관여했던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과거의 실패했던 코스를 그대로 다시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 북한이 궁지에 몰려 있었는데 한국이 끼어들어 부담을 미국에 넘긴 꼴이라고 했다. 남북이 하나가 돼서 미국을 압박하는 구도 아닌가.

"흥정은 붙이는 것이고 외교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어떻게든 대화와 협상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북한이 지금 핵을 포기할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말고 핵을 포기하게끔 만들어 가야 한다. 핵과 미사일을 일단 동결한 뒤, 핵물질, 핵무기,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운반 수단의 검증 가능한 폐기, 그리고 핵 확산 문제까지 하나하나 검토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을 겪어서 비핵화에 도달하는 것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다."

―북핵의 단계적 폐기에 대한 그림은 제네바 기본 합의, 9·19 공동성명, 2·29 합의도 있었다. 다 북한이 위반하면서 깨진 것 아닌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처음 보고 세상에 알렸던 해커 박사가 똑같은 질문을 받고 조목조목 설명하더라. 미국이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문제 삼아 제네바 합의를 먼저 파기했다. 9·19 공동성명이 나온 직후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로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도 잘못했지만, 북한만 잘못했다고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도 대북 협상 과정에서 문제점이 없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 좋다. 해커 박사가 한 말이다. 내가 말했다고 하면 또 문제가 될 거다." 문 특보는 자신이 또 설화(舌禍)를 일으킬까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자신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어쩌다 한번씩 문 대통령 자문에 응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 특보가 하는 말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 안보 노선을 앞에서 이끄는 향도 역할을 해왔다.

―남북 정상회담을 4월 말 갖는다고 발표했다. 남북 대화는 4단 기어를 넣고 달려가는데 미·북 대화가 시동이 잘 안 걸리면 어떡하나. 남북 대화와 미·북 대화는 어느 정도 속도가 맞아야 한다. 미·북 대화의 진전을 보면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결정해야 했던 것 아닌가.

"문 대통령이 비핵화에 방점을 두고 집중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다면 오히려 도움 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북한 최고 지도자에게 미·북 대화 없이 남북 대화가 진전될 수 없다는 사정을 얘기하면서 비핵화를 촉구하면 된다고 본다."

―정상회담 현장에서 직접 타개한다는 건 너무 위험이 큰 도박 아닌가.

"북한과 하는 정상회담은 다르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내려왔을 때 대통령도 얘기하고 정의용 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이 돌아가며 설득해도 비핵화에 대한 답을 못 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북한의 의사 결정 구조상 김정은 위원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 담판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https://youtu.be/Tyjkqj7KGdI   (영상) 

 
문 특보

―이제 막 북한에 대한 제재가 힘을 받기 시작하는 상황이다. 몇 달이 지나야 북한이 느끼는 고통이 극대화된다. 그때 가서 대화를 시작하면 북한이 비핵화 결심을 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북한은 짓이기고 억누르면 오히려 반발하는 전략 문화를 보여왔다. 미·북 또는 남북 대화가 진행될 때는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확산하는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것도 내 주장이 아니라 해커 박사의 분석이다. 북한을 제재하면서도 희망을 주고 긍정적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정부가 미·북 간에 핵 협상을 중매한다고 한다. 핵 문제에서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북핵이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라고 보는 것 아닌가.

"문 대통령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북핵은 우리에게 핵심적 위협이다. 현재 북핵의 사정권에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다. 북핵은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실존 문제다.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북이 대화해야 하는데 실마리가 잘 안 보이니까 촉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북 핵 협상은 핵 폐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중간에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가령 북이 ICBM만 포기하고 핵 보유는 인정받는 타협이 이뤄지면 우리만 핵 인질로 남는 최악 상황이 될 수 있다.

"미국 내에서 그런 주장이 일부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건 미국이 한국을 버리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들고나온 상태에서 그럴 수 있을까. 미국의 주된 흐름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국을 압박하는 블러핑(bluffing·엄포) 카드로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해도 북한에 대한 압박 제재는 계속된다고 했다. 같은 생각인가.

"선택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유엔 회원국으로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준수해야 한다. 한·미(韓美) 공조를 지켜나가려면 미국의 독자 제재에도 협력해야 한다. 다만 북한이 앞으로 비핵화 의지를 구체적 행동으로 이행해 나가면 유엔에서 결의안을 완화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문 특보는 "오늘 정말 말실수한 것 없느냐"고 물었다.

 

[문 특보와 평행선 달린 대화]

 

"트럼프, 文대통령에 호감"
"일반적 인식과 달라" 반론에 "대통령의 진정성 통한 것"

 

문정인 특보는 이번 방미 기간 중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신뢰하고 호감 갖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건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너무 동떨어진 얘기"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문 특보는 "작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문 대통령이 평택 캠프 험프리스까지 찾아가 함께 점심을 한 것, 새벽 4시에 일어나 판문점 비무장지대에 먼저 가서 9시까지 기다린 것 등을 사람들이 얘기하더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정성을 다한 것으로 치자면 아베 일본 총리를 따를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문 특보는 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의 진정성,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성을 평가할까요"라고 또 고개를 갸웃했더니 "내가 트럼프랑 성격이 비슷해서 잘 안다. 아베보다 오히려 문 대통령 같은 스타일이 통한다"고 했다. 1시간 인터뷰 내내 문 특보와의 시각차를 느꼈지만 특히 이 대목에서는 헛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8/20180308030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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