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3·5 합의']

靑 "김정은, 美와 대화 응할 용의…비핵화도 논의할 수 있다고 해"

- 北, 24년 전에도 똑같은 요구
김정은 "비핵화는 선대 유훈"
김정일도 '김일성 유훈' 말했지만 경제 지원만 받고 核개발 계속

- "핵·재래식 무기, 남쪽 향해 안 써"
北, 핵폐기 없인 의미없는 약속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은 6일 저녁 언론 발표문을 통해 북측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와 '비핵화 문제 협의 등을 위한 미·북 대화 용의'를 밝혔다고 전했다. 대화 기간에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 전략 도발을 중단하겠다는 '모라토리엄' 카드도 내세웠다. 청와대 발표대로라면 북한이 미국의 요구 조건에 부응해 대화 의지를 밝히면서 진일보한 결과를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석특사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미 대화에 적극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그 의제로 비핵화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미·북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고, 이를 기초로 미·북 간 대화가 시작될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北, 24년 전에도 같은 요구

청와대는 이날 언론 발표문에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미국의) 군사적 위협 해소' '체제 안전 보장'을 비핵화의 두 가지 전제 조건으로 요구했다는 뜻이다. 이것만 보장해 주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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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왼쪽 앞)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다. 정 실장부터 시계 방향으로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서훈 국정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여정(맨 오른쪽)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하지만 북한은 1994년 미·북 협상 때도 '체제 안전 보장'을 요구했다. 미국이 이를 약속하고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하면서 '제네바 합의'가 성립했지만, 북한은 이후에도 핵 개발을 계속했다. 2003년 4월 북핵 해결을 위한 미·북·중 3자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와 '불가침 조약을 통한 대북 안전 보장'을 요구했었다. 2003년 8월부터 열린 북핵 6자회담에서도 북한은 비슷한 요구를 반복했다. 6자회담은 2005년 9·19 합의로 이어졌고 북한은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끝내 실천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북한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할지도 문제다. 군사 위협 해소와 안전 보장에는 대북 제재·압박의 이완이나 해제부터 한·미 군사훈련의 중지, 주한 미군 철수, 미·북 수교 등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핵 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른 북한이 이런 것들을 요구하며 버틴다면, '북핵 시간 벌기용 대화'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공언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김정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

청와대의 발표에 김정은이 '핵 폐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정 실장은 김정은이 "비핵화 목표는 선대(先代)의 유훈이다.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했지만, 북한 매체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의 사망으로 집권한 이래, 대외적으로는 계속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遺訓)"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자회담·6자회담을 했지만 경제적 이득만 얻어낸 뒤 핵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2011년 집권한 김정은은 경제 건설과 핵의 병진(竝進) 노선을 내세우며 김정일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핵을 개발했다. 이런 김정은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란 아버지 말을 반복한 것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인지는 향후 협상을 통해 확인해야 할 과제다. 협상 타결 이후에도 핵 사찰 등을 통해 거듭 검증이 필요하다.

◇靑 발표 외 '이행 담보' 없어

대북 특사단은 또 북측이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고도 밝혔다. 그러 나 이날 청와대 발표는 우리 측의 '언론 발표문'일 뿐 '남·북 공동 합의서'가 아니다. 북한은 이날 대북 특사단과 관련한 보도에서 핵과 재래식 무기 사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전엔 '서울 불바다' 위협을 수차례 했었다. 북한의 이행을 담보할 수단이 없을뿐더러, 추후 북한이 발뺌하면 우리 정부가 미국에 대해 '잘못된 중매'의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7/20180307002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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