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 조명록이 김정일의 특사로 워싱턴 DC에 도착한 것은 2000년 10월이었다. 양복 차림으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면담한 그는 백악관에 가기 직전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클린턴 대통령에게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방미 목적을 설명했다. 클린턴이 "당신은 마치 정치가 같다"고 조크할 정도로 회담은 순조로웠다. 수교를 염두에 둔 미·북 코뮈니케가 전격 채택됐다. 조 특사 방문 2주 만에 올브라이트 장관이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북 특사를 접견했던 클린턴은 퇴임 후 자신이 특사가 돼 평양을 방문하는 기록을 남겼다. 억류된 미국 여기자 두 명을 구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정일이 만찬장에서 클린턴에게 14가지 요리로 된 최고급 음식을 대접하며 말했다. "오늘 밤 나와 내 애인, 당신을 위한 티켓 3장이 준비돼 있다."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자는 얘기였다. 김정일의 세 차례 관람 제안을 클린턴은 모두 거부했다. 올브라이트가 방북 당시 체제 선전용 아리랑 공연을 보고 돌아와 비판받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물상] 對北 특사

▶아베 일본 총리의 특사인 이지마 이사오는 2013년 5월 평양에 내렸다. 이지마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두 차례 방북을 모두 수행한 책사(策士). 북한의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을 만남으로써 일북 고위급 대화가 재개될 것 같은 분위기를 띄웠다. 참의원 선거를 두 달 앞두고 납치자 문제가 해결로 가닥 잡히면 아베가 방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후속 조치는 불발됐다. 당시 우리 외교부는 "이지마의 방북이 대북 공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공개 비판했다.

▶이번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포함한 대북 특사단의 5일 방북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시큰둥한 분위기다. 두 나라 모두 비핵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어디서도 환영한다는 발언은 없었다. 우리 정부의 특사 파견을 회의적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다.

▶성공한 특사의 조건은 두 가지다. 파견하는 지도자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상대국 지도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 더해 국제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통상 특사 외교의 다음 절차는 정상회담이다.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을 이끌어내는 장면이 상상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5/20180305026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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