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단 訪北]

'비핵화 얘기는 꺼내지 말라' 특사단에 가이드라인 준 셈

北외무성 "미국과의 대화는 전제조건 없는 평등한 입장에서…
"안보 전문가들 "김정은 셈법은 핵보유국끼리의 군축 대화 형식… 막대한 경제적 보상 챙겨 核·경제 병진노선 완성하는 것"
 

비핵화 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정부의 대북 특별사절단 파견을 앞두고 북한이 '비핵화 대화 불가'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나섰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3일 미국이 북·미 대화와 관련해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언급하는 데 대해 "가소롭기 그지없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긴 하지만, '북·미 비핵화 대화 중재'라는 임무를 띠고 5일 평양으로 향하는 우리 사절단을 향해 "비핵화 얘기는 꺼내지 말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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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12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고위급 대표단과 만나 활동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맨 오른쪽은 올림픽 폐회식 때 한국에 왔던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조선중앙TV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과의 대화 자체에 대해선 "가능하다는 입장이며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외교적·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100년, 200년이 지난 후에도 (미국과) 절대로 마주앉지 않을 것"(24일 아태평화위)이라고 했던 데 비하면 다소 전향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북·미 대화의 '적절한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해선 "희떱게(주제넘게) 놀아댄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외교 소식통은 "양측이 이미 뉴욕 채널을 통해 초보적 수준의 대화를 나눴을 수 있지만, 만약 그랬더라도 입장 차가 워낙 커 양쪽 다 '현시점에서 진지한 대화는 어렵겠다'고 판단한 결과일 수 있다"고 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특히 "수십년간에 걸치는 조(북)·미 회담 역사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미국과 전제조건적인 대화 탁(테이블)에 마주 앉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라는 전제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대화는 국가들 사이에 평등한 입장에서 호상(상호)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논의·해결하는 대화"라고 했다. '평등한 입장'이란 미국과 같은 핵보유국 지위를 뜻한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핵보유국끼리의 군축 대화는 가능하지만 비핵화 대화는 안 한다는 얘기"라며 "핵 군축 대화를 통해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챙겨 핵·경제 병진노선을 완성한다는 게 김정은의 셈법"이라고 했다.

북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도 물러나지 않겠다고 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결코 대화를 구걸하거나 미국이 떠드는 군사적 선택을 피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그 어떤 선택에도 다 대응해줄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기간을 피해 다음 달 초 한·미 연합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재개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무력 시위를 할 수 있다고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조선중앙통신도 논평을 통해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제재에 계속 매달리고 합동군사연습을 기어코 강행한다면 우리는 우리 식의 대응 방식으로 미국을 다스릴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 대화 불가' 입장이 청와대의 대북사절단 발표 하루 전에 나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특별사절단 방북을 앞두고 '비핵화 대화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은 '평양에 와서 비핵화 얘기는 꺼내지 말라'는 김정은의 육성(肉聲)을 전달한 셈"이라고 했다. 남성욱 교수도 "김정은이 특사단에 '비핵화는 말하지 말라'고 밝힐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북이 대화의 의지는 보인 만큼 직접적 비핵화 논의는 피하더라도 '상호 도발 중단' 수준의 얘기는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5/20180305001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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