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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글로벌 정글에서 '착한 정부'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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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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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상은 善意가 통하지도 正義롭지도 않다
국익의 정글판에서 '착한 정부'는 美德이 될 수 없다
 

박정훈 논설위원
박정훈 논설위원

천안함 폭침 주범을 받아들인 문재인 정부의 심리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환상에 빠졌거나, 순진하거나다. 20여년간 북한에 속아왔다. 어떤 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 의사가 없다"고 했다. 북한 핵을 "협상용"이라 비호한 대통령도 있었다. 그렇게 믿고 보낸 달러가 핵과 미사일이 됐다. 천안함 도발과 '불바다' 협박으로 돌아왔다. 그토록 당했는데 또 속는 길을 가겠다 한다. 세상에 이렇게 착한 정부는 없을 것이다.

평창 개막식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펜스 미국 부통령과 만났다. 작년 방미(訪美) 후 8개월 만의 대면이었다. 그사이 한·미 간엔 온갖 일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에겐 풀어야 할 현안이 많았다. 대북(對北) 조율이 급했고 동맹의 틈새를 메워야 했다. 또 하나 발등에 떨어진 불이 통상이었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 공세가 심상치 않았다. 만찬 도중 문 대통령이 보따리를 꺼냈다.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보복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애초 시나리오엔 없던 것을 문 대통령이 작심하고 던졌다.

문 대통령으로선 계산이 있었을 것 같다. 명색이 동맹국 대통령의 부탁이다. 미국이 성의 표시는 해줄 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열흘 뒤 미국에서 더 센 폭탄이 날아왔다. 철강에도 초강력 제재를 매기는 안(案)이었다. 성의 표시는커녕 새로운 보복이 추가됐다. 문 대통령 요청이 무시당한 꼴이었다. 애초부터 될 일도 아니었다. 미국발(發) 통상 태풍에 정부는 손 놓고 있었다. 그래 놓고 대통령이 부탁 한마디 한다고 해결될 턱이 없다. 그걸 기대했다면 그야말로 순진한 것이다.

그 뒤에 나온 정부 대응이 더 조마조마했다. 문 대통령은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을 선언했다.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고 관세 맞보복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말은 시원하지만 효과를 낼 대책은 아니었다. 미국이 아파하지도 않을 카드를 흔들며 정면 대응하겠다고 한다. 이걸 보고 '남한산성'을 떠올렸다는 사람이 많았다. 청(淸)의 백만대군 앞에서 허망한 주전론(主戰論)을 외치는 격이었다.

이 정부가 바깥세상을 보는 시각은 환상에 차 있다. 정의가 항상 이기고 선의(善意)가 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책도 없이 '당당하고 결연하게'를 말하진 못한다. 북한의 뻔한 노림수에 놀아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 속 세계와 다르다. 글로벌 세상은 공정하지도 늘 정의롭지도 않다. 힘과 이익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국가 간 관계다. 국익을 놓고 약육강식 경쟁이 벌어지는 정글에 가깝다. 이런 현실을 모르는 정부가 국가 경영을 잘할 수는 없다.

한국GM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하자 트럼프가 트위터 글을 올렸다. "그들(GM)이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고 있다." 그는 한국의 피해를 미국의 이익으로 간주했다. 군산공장 폐쇄가 자기 덕분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국가 간 이익 관계를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있다. 비정하고 냉혹하다. 그의 관점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미국 대통령을 욕할 수는 있지만 갈아 치우진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기에 맞춰 전략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무역 보복을 휘두르는 목적은 명백하다. 남의 나라 기업과 일자리를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국 기업의 탈출 움직임이 시작됐다. 관세 폭탄을 맞은 철강업체들이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태세다. 가전·석유화학 등의 대기업들도 미국 내 투자 계획을 늘렸다. 그만큼 우리 일자리가 빠져나가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다. 모든 나라가 기업과 일자리를 더 차지하려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지키지 못하면 빼앗기는 정글의 게임이다.

정글과도 같은 글로벌 경쟁의 본질을 한국 정부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것을 지키긴커녕 몰아내지 못해 안달이다. 세금을 올리고 비용 부담을 늘려 스스로 경쟁력을 깎고 있다. 노동 개혁도 걷어찼다. 기업은 기득권 세력이니 반(反)기업을 해야 공정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대기업도 밖에 나가면 보잘것없는 약자일 뿐이다. 기업들은 사투를 벌이는데 정부는 기업 발목을 잡고 있다. 세상 물정과는 담을 쌓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착한 정부' 콤플렉스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다. 경제도 '착한 경제', 성장도 '착한 성장'을 하겠다고 한다. 이 정부에 착함이란 공정성과 사회 정의를 뜻한다. 노동자와 약자에게 착한 정책만 펴면 된다고 한다.

세상에 우리만 존재한다면 그래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전(全) 지구적으로 펼쳐지는 국익의 각축전에서 착함은 미덕이 될 수 없다. 글로벌 정글판의 게임은 정교한 국가 전략과 유연한 전술을 구사하는 나라가 승리한다. '착한 정부'는 곧 '무능 정부'의 길을 걷겠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1/20180301021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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