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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체임벌린에게 박수쳤던 영국인들처럼 행동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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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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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英國선 '反戰주의' 열풍… "히틀러는 평화 원한다" 주장도
北核 위기에 눈감는 '거짓 평화'… 80년 전의 영국을 연상케 해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2차 세계대전 발발을 막지 못한 이유를 따질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1938년 9월 히틀러에게 체코의 수데텐란트를 넘긴 체임벌린 영국 총리다. 뮌헨에서 히틀러를 만나고 돌아온 그는 "유럽의 평화를 지켜냈다"고 선언했지만, 전쟁이 터지자 히틀러에게 속은 정치가로 지금까지 손가락질당하고 있다. 그런데 전쟁을 막지 못한 게 체임벌린만의 탓인가. 당시만 해도 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많은 국민이 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를 공항에 마중 나가 열렬히 환영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폴 존슨은 저서 '윈스턴 처칠의 뜨거운 승리'에서 영국의 1930년대를 '반전(反戰)주의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던 시기'라고 규정했다. 당시 영국인들은 전쟁만 피할 수 있다면 체코 땅쯤이야 누가 갖든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정치인들은 그런 여론에 영합했다. 1933년 보궐선거 때 노동당 당수였던 조지 랜스베리는 "모든 신병 캠프를 폐쇄하고 군대의 무장을 해제하며 모든 끔찍한 무기를 폐기하겠다"고 공약해 승리했다. 2년 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전쟁 책임을 규정하고 재무장을 금지한 베르사유조약 파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전쟁이 두려웠던 영국인들은 도발의 명백한 물증에 눈감고 "영국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히틀러의 립 서비스에만 집착했다. 대표적인 평화주의자였던 클리포드 앨런 의원은 1935년 1월 히틀러를 만난 뒤 아무 근거도 없이 "독일의 공격적인 언사와 호전적인 구호는 그들의 진심이 아니다. 나는 히틀러가 진심으로 평화를 원한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시민사회에선 이른바 '평화 투표(Peace Ballot)'라는 반전·평화 캠페인이 전개됐다. 이 평화 투표는 5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엔 '국제 협정에 의한 전면적인 군축을 지지하느냐?'는 항목도 있었다. 나치 독일 앞에서 발가벗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인데도 1000만명 넘는 국민이 찬성했다. 반대는 77만명에 불과했다. 옥스퍼드대 학생들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왕과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독일의 독가스 폭탄 50개면 런던 전체를 독살할 수 있다"며 공포심을 자극했다. 독일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저서 '파편화한 전쟁'에서 '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은 자국민의 반전 분위기와 큰 상관이 있었다'고 썼다. 체임벌린의 선택이 영국 국민의 선택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뮌헨회담에 앞서 1938년 9월 15일 히틀러의 베르크호프 서재에서 만남을 가진 체임벌린, 히틀러 그리고 통역사 파울 슈미트(왼쪽부터). /조선일보 DB

북한 김정은이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보내겠다고 통보했을 때 우리 정부는 그의 교체를 요구하기는커녕 대남 도발의 장본인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기존 입장을 뒤집는 자가당착적 발언과 '남북의 화해'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궤변이 잇따랐다. 여기에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 아니라며 재조사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가세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김정은의 위장 평화 발언에만 귀 기울이고 "핵 포기는 없다"는 그의 거듭된 주장은 못 들은 척한다는 점에서 거짓 평화에 매달렸던 80년 전 영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위장된 평화는 오래가지 못하며 결국 진실의 순간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영국인들에게 그 순간은 독일이 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를 잇달아 침공한 1940년이었다. 히틀러의 평화 약속이 가짜임을 깨달은 그들은 용감하게 진실과 마주 섰고 "바다에서, 공중에서, 들판과 거리에서 싸우겠다"고 다짐한 처칠을 새 지도자로 선택해 나치 독일에 맞섰다.

우리라고 다를 수 없다. 북한 비핵화가 우리의 국민적 요구임을 김정은에게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정부 당국이 김영철 일행을 위한 서울 나들이 계획을 짰다가 그를 향한 싸늘한 시선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다. 3일간 주로 호텔에 머물다 북으로 돌아간 김영철은 한국 국민의 뜻을 김정은에게 제대로 전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7/20180227029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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