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은 25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만찬을 가졌고, 26일 점심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만났다. 김영철 일행의 26일 나머지 일정은 전체가 비공개로 돼 있어 누구와 만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한국에 온 미국과 북한 실무진들이 미·북 간의 실질적 대화를 위한 예비 접촉을 가졌을 것이라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영철을 만났을 때 북한 비핵화를 언급했으며 김영철은 특별히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고 경청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미 백악관은 "(문 대통령에게 밝힌) 북한의 대화 의지가 비핵화로 향하는 첫걸음인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미·북 간에 상대방 입장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탐색전은 시작됐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미국은 핵으로 협박하면서 한국엔 손을 내밀어 한·미 동맹 이간을 노렸다. 그랬던 북한이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같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은 통미봉남으로 대북 제재망을 허물려던 구상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북이 "북·미 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은 일단은 협상 테이블 위에 핵 문제를 올려놓을 생각이 있는 것으로 비친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북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러나 북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안갯속이다. 북은 20년간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면서 뒤로 핵·미사일을 개발해왔다. 거의 모든 전문가가 대화와 협상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이 핵을 버리는 것은 '핵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죽게 됐다'는 판단을 할 때만이 가능하다. 지금 김정은은 궁지에 몰려 있지만 그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다. 북의 의도와 동향을 정확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다. 대화가 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제재를 낮춰주면 또 북에 속고 말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미국이 북핵은 사실상 용인하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탄(ICBM)만 제거하는 선에서 타협하려 할 가능성이다. 북은 이 목표를 갖고 20년간 핵과 함께 ICBM을 개발해왔는지도 모른다. 한국을 인질로 잡을 핵이 진짜 목표였고 ICBM은 미국과의 협상용 카드였던 것이다. 5200만 한국민에게 최악의 상황이지만 현 정부 인사 상당수는 이런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협상이 결렬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거칠고 불행한 2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미·북 대화엔 시동이 걸렸지만 앞에는 멀고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비핵화는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핵 있는 가짜 평화'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6/20180226027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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