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평화 공세·대남 접근서 김정은의 치기·초조함 보여
평창올림픽 후 한반도, 60년 만에 가장 위험할 수도
韓·美 공조와 역할 분담 확실해야 北 대화로 끌어내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평창올림픽 개막 이래 올림픽 본연의 환희와 눈물에 울고 웃고 했다. 승패를 떠나 지구촌 젊은이들이 보인 각본 없는 드라마와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3수(修) 끝에 이뤄낸 올림픽에서 평창이 보인 대한민국의 저력에 뿌듯하다. 그러나 올림픽 기간 내내 마음 한 구속 찜찜함도 있었다. 평창올림픽은 아쉽게도 정치 올림픽이었다.

북한은 현송월, 김여정, 삼지연악단, 응원단 등 올스타팀을 평창올림픽에 보내 대대적인 평화 공세를 했다. 올림픽 개막 전날 최신 미사일을 동원한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단행해 핵 무력을 과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핵을 보유한' 친절한 동족(同族)임을 부각시키면서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전격 제의했다. 국제사회의 이목은 평창이 아닌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리게 됐다. 미국은 펜스 부통령과 이방카 선임고문까지 동원해 대응했다.

역설적이지만 북한의 대대적 평화 공세와 대남 접근에서 다급함이 느껴진다. 김여정·김영남이 귀국한 날 마치 나라를 구하고 돌아오는 영웅을 맞이하는 것처럼 어리둥절할 정도의 대대적인 환영 행사와 함께 김여정과 김영남을 굳게 잡는 김정은의 모습에서 북한 정권이 상당히 몰려 있고 다급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강화되고 있는 국제 제재와 미국의 군사 옵션 가능성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16일 노동당 고위간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대대적인 대남 평화 공세에는 한국을 활용해 미국의 군사행동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보다 반전(反戰)을 중시하는 한국의 입장을 활용하여 정상회담 제의 등 최대치 대남 접근을 통해 한·미를 이간시키는 동시에 당분간 한국을 앞세워 미국의 군사 옵션을 막겠다는 포석이다. 더욱이 '올림픽 휴전'을 통해 핵·미사일 완성에 절실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북은 남·남(南·南) 갈등도 즐기고 있을 게 분명하다.

대남 공세의 또 다른 목적은 한국을 이탈시켜 조여오는 국제 제재의 결정적 틈을 벌리고 형해화(形骸化)시키는 것이다. 선수뿐만 아니라 정치 대표, 응원단, 삼지연악단, 태권도 시범단 등 500여명의 대표단을 평창올림픽에 참가시킨다는 명분으로 육·해·공로로 파견해 국제사회의 제재 틀에 흠집을 냈다. 급기야 천안함 폭침의 주범인 김영철까지 보내 국제 제재를 노골적으로 무력화하려 했다. 아무리 올림픽이라 하더라도 대북 제재 원칙의 일각이 무너진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의 미·북 중재 노력이 힘을 발휘할 뻔했으나 북한의 거부로 무산됐다는 점이다. 한·미 정보 당국과 북한 사이의 채널이 가동돼 올림픽 개막에 참석한 펜스 미 부통령과 김여정 사이의 비밀 접촉이 이루어지기 불과 두 시간 전 북한이 거부한 것이다. 이 대목은 과거 현송월이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관람이 예상되던 모란봉악단 북경 공연 직전 미사일 발사 장면 제지를 이유로 취소하고 나왔던 장면과 유사하다. 김정은의 치기(稚氣) 어린 행동이다. 미·북 대화에 나섰다가 마지막 순간에 접은 것이다. 폐막식에 대남 공작 총책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보낸 것은 미·북 대화에는 관심이 없고 초점이 한국에 있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다.

화가 난 미국은 폐막식을 앞두고 강력한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김정은은 미·북 대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조금만 밀어붙이면 ICBM 완성이 코앞인데, 트럼프의 군사행동 가능성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치기와 초조함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펜스 부통령과의 회동을 전격적으로 거부한 데에는 김정은의 치기가 작용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미·북 대화보다는 ICBM 완성에 초점을 둘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북 관계를 적극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체육·문화 교류, 군사회담, 정상회담 등 각종 남북 대화 제의와 만남이 봇물 터진 듯 늘어날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롤러코스터처럼 북한의 핵무장 디데이(D-day)까지 한반도는 6·25전쟁 이래 60여년 만에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지 모른다. 남북 관계의 유혹도 크지만 북한 올스타의 가면 무대 뒤에 숨겨져 있는 본질적 위협을 직시해야 한다.

그럴수록 긴밀한 한·미(韓·美) 공조가 긴요하며 이를 통해 김정은을 초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바라는 미·북 대화를 여는 길이다. 한·미 양국의 입장 차이가 '굿 캅'과 '배드 캅'의 역할 분담에 따른 '짜고 치는 고스톱'이기를 바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5/20180225016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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