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美 '연결고리' 역할 주도]

김정은 신년사 이후 남북 급진전 "치밀한 각본 없인 불가능한 속도"
미국 가 폼페이오 CIA국장 만나… 펜스·北대표단 서울회동도 설득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말 극비리에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접촉을 조율한 것으로 22일 알려졌다. 서 원장은 이에 앞서 올 초부터 진행된 남북 대화 물밑 접촉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원장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각각 채널을 구축해 남북 관계를 관리하고 미·북을 연결하는 '핵심 키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 조건으로 언급한 '여건 조성' 임무를 서훈이 맡고 있다"고 했다.

◇北 김영철과 직거래하는 서훈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김영철이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배경과 관련, "남북 간 한 라인에서 접촉이 이뤄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며 "북한과의 비공식 접촉에선 아무래도 국정원 라인이 가동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 원장과 김영철 간 물밑 조율이 있었음을 사실상 확인한 것이다. '국정원-통전부 핫라인'은 노무현 정부 시절 가동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끊어졌으나 최근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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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보首長 -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대화 국면을 막후에서 조율한 서훈(왼쪽) 국정원장이 지난해 국회를 방문한 모습. 서 원장은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핫라인을 가동하는 한편,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통해 북·미 접촉을 물밑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강호 기자·AFP 연합뉴스
이 관계자는 또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비공식 접촉을 통해 확인했다"고 했다. 이어 김영철의 카운터파트(대화 상대)로 서 원장을 지목하며 "(두 사람이) 만날 것"이라고도 했다. 남북 간 공식 핫라인인 판문점 연락 채널로는 실무적·행정적 얘기들만 오가고, 북 대표단의 개·폐막식 참석 등 '깊숙한' 얘기들의 경우 서 원장이 상당 기간 비공식 채널을 통해 김영철과 '직거래'했다는 얘기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남북 관계 급진전의 직접적·결정적 계기가 된 김정은 신년사가 나오기까지 서 원장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이후 전개된 상황은 거의 다 서 원장의 작품 같다"고 했다.

지난달 김정은 신년사 발표 이튿날부터 남북이 '고위급 회담 제의(남·2일)→판문점 연락 채널 복원(북·3일)→한·미 연합 훈련 연기 발표(남·4일)→고위급 회담 수락(북·5일)'을 숨 가쁘게 주고받은 과정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누군가의 치밀한 각본 없이는 불가능한 속도"란 말이 나온다.

◇북·미 접촉의 연결고리 역할도

서 원장의 역할은 남북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서 원장은 남북이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서로 선발대를 교환하며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던 지난달 마지막 주 미국을 다녀왔다. 당시 서 원장은 카운터파트인 폼페이오 CIA 국장을 만나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방한하는 펜스 미 부통령이 북 고위급 대표단과 만날 것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달 말 백악관은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회동을 원한다는 의사를 CIA로부터 전달받고,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접촉을 승인했다. 서 원장이 전달한 '북의 의사'가 CIA를 통해 백악관에 보고됐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일행과 문 대통령의 면담·오찬에 예고 없이 서 원장이 배석한 것도 물밑에서 북·미 접촉을 중개한 그의 '연결고리' 역할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북측의 막판 취소로 불발되지 않았다면 김여정 일행은 문 대통령과의 오찬 직후 청와대에서 펜스 부통령을 만날 예정이었다. 서 원장은 이 자리에서 비핵화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북 대표단에 '브리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여정은 귀환 이튿날인 지난 12일 오빠 김정은에게 '미국 측의 동향'을 보고했다. 서 원장의 브리핑 내용이 김여정을 통해 김정은에게 보고된 셈이다.

현재 서 원장은 북·미 대표단이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가차 방한하는 계기에 다시 양측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백악관과 청와대는 모두 미측 대표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이 북측 인사를 만날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방카가 아닌 미측 대표단이 북측과 접촉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3/20180223002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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