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미국 힘' 빌려 4년여 이란 '경제 봉쇄'
겨우 4개월 된 對北 제재… 20개월 넘게 지속해야
 

안용현 논설위원
안용현 논설위원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이란에 2010년은 악몽의 한 해였다. 핵 프로그램을 통제하는 컴퓨터 수천 대가 스턱스넷(stuxnet)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의 20%가 통제 불능에 빠졌다. 주요 핵 시설에서 원인 모를 폭발 사고와 고장이 이어졌고 핵 과학자들은 줄줄이 암살당했다.

뉴욕타임스 등은 '이란 핵을 막으려는 이스라엘 비밀공작의 결과'라고 했다. 핵 조기 완성을 노리던 이란 계획은 계속 차질을 빚었다. 이스라엘은 1980년대 말 이란이 비밀리에 파키스탄 핵개발의 주역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손잡을 때부터 심각성을 알아챘다. 칸 박사는 시리아·리비아 등에도 핵 기술을 판매한 인물이다. 2005년 '이스라엘 멸족(滅族)'을 공언한 아마디네자드가 이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스라엘은 명운을 걸고 핵 저지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1981년 6월 이라크의 원자로와 2007년 9월 시리아의 원자로를 '외과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으로 제거한 나라다. 특히 2007년 공습의 경우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협조를 거부했는데도 단독으로 F-15 전투기를 띄워 원자로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랬던 이스라엘도 이란 핵 시설은 때리지 못했다.
위성촬영 업체 디지털글로브가 제공한 이 두 위성촬영 이미지는 핵시설로 의심되는 시리아 시설로 지난 2007년 9월 6일의 이스라엘 공습 전과 공습 후의 모습니다. 좌측 이미지는 지난 2007년 8월 5일, 그리고 우측 이미지는 2007년 10월 24일 각각 촬영한 것이다. /연합뉴스

2002~2011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이끈 메이어 다간은 "군사 공격으로는 이란 핵개발을 지체시킬 뿐"이라고 했다. 실제 이라크·시리아의 핵은 노출된 원자로가 전부였지만, 이란 핵은 이슬람 시아파 성지와 지하동굴 등에 분산 은닉돼 있었다. 위장 시설도 많아 공격 목표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 말 이미 자체 핵무장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중동 강국인 이란과의 전면전이 가져올 치명적 피해를 우려했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미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미국 내 유대인 영향력을 십분 활용했다. 2011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외국은행을 미 금융시스템에서 퇴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란 '돈줄'인 원유 수출 대금은 중앙은행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 법은 이란산 원유 금수(禁輸)나 다름없었다. 한 달 뒤 유럽연합(EU)은 이란 원유 수입을 막았고, 이란 우호국이던 중국도 이란산 수입을 평소 절반으로 줄였다. 미국은 이란 은행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중국 14위 규모였던 쿤룬은행을 제재했다. 결국 2013년 당선된 개혁파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과 진지하게 협상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고, 2015년 이란 핵과 경제 제재를 맞바꾸는 협상이 타결됐다. 대(對)이란 제재가 본격화한 지 4년 만이다.

한민족을 절멸시킬 수 있는 북핵이란 암 덩어리는 외과 수술로 제거하기에는 너무 커졌다. 북핵 암 진단을 받은 지 25년이 지났으나, 우리 정부가 북핵을 늦추기 위해 이스라엘처럼 필사의 비밀공작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북은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북한 핵 보유는 일리가 있다"는 소리만 들렸다.

미·중 등 국제사회가 대(對)이란 수준의 대북 제재망을 구축한 게 겨우 3~4개월 전이다. 그 약효는 북한 김여정이 평창올림픽에서 미국 부통령을 만나려 한 데서 입증됐다. 한반도와 중동은 다르다. 그러나 전쟁 없이 '핵 인질'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경제 봉쇄를 당한 이란이 비핵화 대화에 나오는 데도 20개월 넘게 걸렸다. 지금 대북 제재에 엉뚱한 구멍을 내지 말고 20개월만 유지해 보자. 몰리고 다급한 쪽이 더 많이 양보하는 법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2/20180222033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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