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편 들고 美 경시하는 現 정부 노선은 국제정치적 無知와 편향 탓
낡은 운동권 정서와 小國 의식에 사로잡혀 전략적 안목 부족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처칠(1874~1965)은 외톨이였다. 나치를 강력 비판해 정치적 퇴물로 여겨졌다. 당시 영국은 체임벌린(1869~1940) 총리의 유화(宥和)정책이 득세했다. 히틀러에게 굴욕적인 양보를 거듭한 뮌헨협정(1938년 9월)으로 체임벌린은 '우리 시대의 평화'를 이룬 정치가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처칠은 평화를 구걸한 뮌헨협정은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고 외쳤다.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다'는 게 그의 확신이었다. 1939년 9월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처칠의 혜안이 입증되었다.

리더십에는 시·공간을 꿰뚫는 입체적 인식이 필수다. 지도자라면 과거·현재·미래의 흐름을 보는 역사학적 통찰과 지역 정세와 국제정치에 대한 판단 능력을 지녀야 한다. 처칠은 역사와 국제정치를 녹여낸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에 비해 한국 지도자들은 역사학과 국제정치학을 합친 전략적 안목이 부족하다. 우린 반만년 역사를 앞세우지만 '제국'을 다스린 경험이 없다. 낡은 운동권 정서의 영향을 받는 문재인 정부는 소국의식(小國意識)과 결합한 민족주의적 일국주의(一國主義)를 고집한다.

작년 문재인 대통령 방중(訪中) 시 베이징대 연설이 상징적이다. "중국과 운명공동체인 작은 나라 한국이 대국의 중국몽(中國夢)과 함께할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외교적 공치사(空致辭)가 아니라는 사실이 심각하다. 역사와 국제정치를 통찰하는 대한민국 지도자라면 가서는 안 될 퇴행의 길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몽의 실체를 알고 있는지 의문일 정도다. 중국 편을 들면서 미국을 소홀히 하는 문재인 정부의 친중경미(親中輕美) 노선은 역사학적인 편향과 국제정치적 무지(無知)의 산물에 가깝다.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15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열혈 독서가였던 마오쩌둥은 중국 왕조 전사(全史)인 3213권에 이르는 24사(史)를 평생 숙독(熟讀)했다. 마르크스주의자이기 전에 중화주의자였던 마오의 진짜 스승은 진시황이었다. 6·25전쟁에서 마오가 최강국 미국과 정면 대결을 불사한 배경이다. 통일이 좌절된 우리로선 통탄할 일이었지만 철저히 '제국 중국'의 전략에 입각한 행보였다.

중국몽의 시진핑은 마오의 충실한 후예일 뿐이다. 한반도를 조공국으로 보는 중국 역사의 유전자가 너무나 선명하다. '세계사의 가장 큰 행위자'임에도 인권과 자유에 무지한 제국 중국 앞에 한국의 자존(自尊)과 자유를 지키는 일은 중차대한 문명사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가려 한다. 대한민국이 치러야 할 비용을 측정하기 어렵다.

미국 역사 역시 제국의 경험으로 가득하다. 19세기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과 대영제국을 축출해 서반구 전체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어 제1·2차 세계대전 승리로 '20세기 로마제국'이 된다. 대한민국 건국 자체가 '제국 미국'의 자장(磁場) 안에서 가능했다. 냉전에서 소련을 이긴 미(美) 제국은 제국 중국의 굴기로 사상 최대의 도전을 맞고 있다. 신흥국이 패권국의 자리를 위협할 때 생기는 전쟁 위기인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 미국과 중국이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세계적 관심사이다.

북한발 핵 위기는 사상 최초의 핵전쟁이자 제3차 세계대전이 될 미·중 전쟁의 방아쇠 노릇을 하고 있다. UN과 미국·유럽연합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조차 북한을 규탄하는 까닭이다. 북핵은 인류의 공적(公敵)이 되었다. 북핵을 김정은 정권의 체제 보전 이슈로 읽는 건 일국주의의 편향에 불과하다. 남북 양국 체제에 입각한 항구적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북한 비핵화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세계 최대 안보 포럼인 뮌헨안보회의(MSC)에서 북한에 대한 '최고의 압박과 제재'가 주 의제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핵 최대 피해국인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이 회의에 불참한 건 국제사회의 '코리아 패싱'을 자초한다.

1940년 전시(戰時) 거국 내각 총리가 된 처칠은 '피와 땀과 눈물'의 리더십으로 조국과 현대 민주주의를 나치 의 마수(魔手)에서 구한다. '약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역사와 국제정치의 진실이 그를 이끌었다. 비굴함과 유약함으로 평화를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 갈수록 심해지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에서 문 대통령이 강조한 "의연하고 당당한 대응"이 요구되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대중 관계와 대북 관계다. 처칠의 촌철살인이 웅변한다.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2/20180222033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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