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ICBM으로 美 북핵 게임 변경… 국방부가 국무부 대신 주도권
확실한 군사 준비 태세 돼야 전쟁 막는다는 매티스 신념
한국 정부도 보조 맞춰야 평화적 북핵 해결 가능해져
 

김창균 논설위원
김창균 논설위원
한 대기업 CEO는 얼마 전 업무상 알고 지내는 인도네시아 장관의 전화를 받았다. 군사 협력 차원에서 지난 1월 23일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3월 말 이후 한반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귀띔해 주더라면서 당신 회사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매티스 장관이 인도네시아 측에 전달한 메시지의 긴장도가 상당히 높았던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3월 말은 폼페이오 CIA 국장이 작년 10월 "북한이 핵으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6개월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했던 시기와 얼추 맞아떨어진다.

매티스 장관은 1월 26일 하와이에서는 "남북 간의 올림픽 대화가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했고, 지난 10일 로마에서는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이 좋은 신호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1990년대 초반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후 역대 미 행정부에서는 국무부 장관이 이 문제를 관장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주도권이 완전히 국방부 장관에게 넘어갔다. 틸러슨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잃은 탓도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이 작년 7월 이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거듭하면서 북핵 게임의 성격이 바뀐 데 있다.

북핵이 한반도 주변 국가들 간의 외교 현안이 아니라 북한이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느냐는 군사 문제로 바뀐 것이다. 이후 매티스 장관이 가는 곳마다 북핵 관련 질문이 쏟아지고 있고, 매티스 장관도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 수위가 매티스 장관의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한미 국방장관회담이 열린 1월26일(현지시각) 하와이 호놀룰루 미 태평양사령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그런 점에서 미 외교 전문가인 조너선 크리스톨 세계정책연구소(WPI) 연구원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매티스 장관을 확실한 원군(援軍)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한 것은 곱씹어볼 만하다. 크리스톨 연구원은 "남북 협상이 진행됨에 따라 미 국방부와 긴밀하게 협조해 매티스 장관의 동의를 확인해야 한다"면서 "만일 협상을 서두르다 잘못되면 워싱턴 매파가 북한에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쉽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다.

국방장관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임무지만, 대통령이 군사작전이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판단을 구하는 상대 역시 국방장관이다. 특히 북핵이 실제로 미 본토에 위협이 되는지의 판단은 상당한 수준의 군사 기술적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매티스 장관이 지난 7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반도 상황은 확고하게 외교적 트랙 안에 있다"고 한 것은 북핵 해결을 군사적 트랙으로 넘겨야 할 시점에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매티스 장관은 작년 10월 "한반도 무력 충돌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페렌바흐의 '이런 전쟁'을 읽어 보라"고 돌려서 대답했다. '이런 전쟁'은 6·25전쟁 초기에 투입된 미 24사단이 오산·안산·평택·조치원으로 뒷걸음질치며 연전연패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전한다. 미 의회가 예산을 대폭 삭감해 대대급 훈련도 생략하고, 인민군의 T-34 탱크에 맞설 장비도 없었던 미군의 '준비 부족'을 고발하는 책이다. 책 서문은 '미식축구나 야구 감독들은 선수들을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수천 번의 반복 훈련을 시킨다. 이렇게 단련되지 않은 팀은 강하고 거친 상대를 만나면 나가떨어지게 돼 있다. 운동 시합이 이럴진대 전쟁은 말할 것도 없다. 준비 안 된 군대가 전쟁터에 나서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고 경고한다. 매티스 장관은 무력 충돌을 막는 길은 확실한 준비 태세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면서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송영무 국방장관은 "한·미 훈련 재개 시기를 3월 말쯤 밝힐 것"이라며 매티스 장관과 합의한 사실을 밝힌 것은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기류를 제대로 읽고 대응하는 것으로 보여 안심이 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믿는다면, 북핵 문제가 군사적 트랙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면 비핵화를 위해 한국이 미국과 확고하게 발을 맞추고 있다는 믿음을 매티스 장관에게 줘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0/20180220034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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