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통상 충돌]
정부, 中의 사드보복·美의 통상압박에 다른 대처

文대통령, 펜스 부통령 면담 때 '세탁기 보복' 풀라고 요청했지만
美는 되레 '철강 관세 폭탄' 꺼내
청와대, 작년 中 사드보복 땐 "北核 관련 중국과 협력이 중요"
이번 美엔 "룰 어기면 할말 할것"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해 이례적으로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하라"고 정면 대응을 지시했다. 그동안 한·미 간엔 무역 문제로 여러 번 마찰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국 대통령이 직접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와 한·미 FTA 위반 여부 조사 등 '법대로 카드'를 꺼낸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는 중국의 사드 경제 보복이 가시화된 작년 9월 청와대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중국을 WTO에 제소하지 않겠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한·미 간 민감한 현안에 대해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강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이례적이다. 양국 관계의 이상 기류는 물론 수출 타격에 대한 국내의 우려를 방치할 경우, 이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만큼 문 대통령이 직접 정면돌파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미국과 안보 현안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무역 행위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는 것이 대통령의 오래된 생각"이라며 "국제 룰대로 당당히 대처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산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려는 데 대해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산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려는 데 대해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고 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 이후 사드와 북핵 문제 등에서 기존의 한·미 동맹 중심에서 '국익 중심'을 내세우며 대중(對中) 외교 강화와 신(新)북방정책, 신(新)남방정책 등 외교 다변화를 추진해 왔다. 한·미 동맹 약화 우려가 제기됐지만, '적폐 청산' 드라이브와 '수출 호조' 등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잇단 보호무역 조치에 내부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각종 통상 압력으로 인해 우리 경제의 근간인 수출이 치명타를 맞을 수 있고, 이는 정권 차원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수출 증가는 작년 경제성장의 회복에 큰 기여를 했지만 최근 환율 및 유가(油價) 불안에 더해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평창올림픽 미국 대표단장 자격으로 방한했던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 철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통상 압력 수위를 낮춰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문 대통령의 요청 이후에도 세이프가드 철회 대신 한국산 철강 제품에 최대 53%의 고율 관세를 추징하겠다는 초강경책을 들고나왔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실망한 문 대통령이 정면 대응 전략으로 선회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작년 이후 누적돼 온 한·미 간 이상 기류가 반영된 측면도 없지 않다. 한·미는 북핵 대응엔 공조해 왔지만, 대북 제재 수위와 북한과의 대화 문제, 사드 배치, 한·미 훈련 연기 등에서 미묘한 입장 차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고문의 방한을 코앞에 두고 갈등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작년 중국의 사드 보복 때와도 다르다. 당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지금은 북핵·미사일 도발로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며 "한·중 간의 어려운 문제는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더욱 강화하며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고 했었다. 법적 대응보다는 양국 간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그때와 대응이 달라진 이유에 대해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FTA 같은 시스템 불공정에 대한 문제 의식은 없었던 것이다.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다만 통상은 안보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안보와 통상을 연계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라며 "문 대통령의 이번 지시도 통상 문제는 통상 문제로 다루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미 간의 안보 현안 때문에 미국의 통상 압력 조치에 침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미국이 국제적 통상 룰을 위반한 것이 있다면 원칙대로 할 말은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도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안보와 통상 문제를 연계하려는 듯한 전략을 취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사드 도입에 대한 진상 조사를 지시하자 다음 달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FTA 재협상 문제를 들고나왔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이 안보와 통상을 연계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안보와 통상을 분리해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0/20180220003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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